[[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홍천군 출신 인물]][[분류:1916년 출생]][[분류:2010년 사망]][[분류:건국포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박용신.jpg|width=300px]] || || 성명 ||박용신(朴龍信) || || 일본식 이름 ||廣巖龍信 || || 생몰 ||[[1916년]] [[1월 25일]] ~ [[2010년]] [[5월 28일]] || || [[출생지]] ||[[강원도]] [[홍천군]] 동면 성수리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포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용신은 1916년 1월 25일 강원도 홍천군 동면 성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잇달아 졸업한 뒤 경성제국대학 법대를 수학하고 경성중앙방송국에 입사해 아나운서로 재직했다. 그러던 1941년, 그는 [[송진근]], [[성기석]], [[염준모]] 등과 함께 해외 단파방송을 비밀리에 청취하고 이를 녹취(錄取)하여 임시정부 소식과 구미외교위원부의 활동, 연합국의 승전, 광복군의 활약, 그리고 국제정세의 추이 등을 문서로 작성하여 송진우·김병로 등에게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1942년 12월 체포되었고, 1943년 11월 소위 보안법 및 형사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조용히 지내다 [[8.15 광복]] 후 미군사령관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경성전기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2005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고, 2010년 5월 2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