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철원군 출신 인물]][[분류:1898년 출생]][[분류:1957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박용각.jpg|width=300px]] || || 성명 ||박용각(朴容珏) || || 이명 ||박용규(朴容珪) || || 생몰 ||[[1898년]] [[11월 4일]] ~ [[1957년]] [[6월 6일]] || || [[출생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용각은 1898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박용만(1881)|박용만]]의 친척으로, 1919년 3월 철원에서 [[3.1 운동]]이 벌어지자 시위에 참가한 뒤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강원도 의원으로 참여했으며, 1921년에는 [[이승만]]의 대미위임통치 청원에 반대하는 성토문(聲討文)을 발표했다. 이후 임시정부가 내부 분열로 쇠약해지자 의정원 직을 사임한 뒤 1925년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의 후보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의열단]]에 가입하여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1926년, 박용각은 의열단의 방침에 따라 중국군관학교(中國軍官學校)에 입교하여 조선인 간부훈련단에서 훈련을 마치고 활동하였다. 이후 조선의용군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1940년경 [[김원봉]]과 함께 충칭으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다시 가담했고, [[8.15 광복]] 후 귀국해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6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박용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