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 '''{{{#000000,#e5e5e5 박영길의 역임 감독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롯데 자이언츠 감독)] [include(틀:삼성 라이온즈 감독)] [include(틀:현대 유니콘스/역대 감독)] }}} || ||<-2><table align=center>[[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2082501002031700175051.jpg]]|| ||'''이름''' || 박영길(朴永吉) || || '''생년월일''' || [[1941년]] [[11월 5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지''' || [[부산광역시]] || || '''학력''' ||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고]] - [[동아대학교 야구부|동아대]] || || '''포지션''' || [[외야수]]([[중견수]], [[우익수]]) || || '''투타''' || [[좌투좌타]] || || '''소속팀''' || [[한국전력공사 야구단|남선전기]][br][[상무 피닉스 야구단|육군 경리단]][br][[한국전력공사 야구단|한국전력]] || || '''지도자''' || [[롯데 자이언츠]] 감독 (1982~1983)[br][[삼성 라이온즈]] 감독 (1987~1988)[br][[태평양 돌핀스]] 감독 (1991) || || '''해설위원''' || [[KNN|PSB]](1995~2003)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야구인이자 '''한국 야구 최고 타격이론가.'''[* 삼성 타격코치 시절 84-86년 삼성은 사상최고의 타격을 자랑했으며 감독 재직시절인 87년에는 '''프로팀 최초 팀타율 3할'''을 찍었다.~~물론 그게 태평양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게 함정~~] 그리고 '''[[외야수]] 출신 감독 중 [[KBO 리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한 차례 한국시리즈 준우승([[1987년 한국시리즈|1987년]])을 했으며, 32년 후인 [[2019년 한국시리즈|2019년]]에 같은 외야수 출신이었던 [[장정석]]이 준우승을 올렸다. 그러나 나머지 외야수 출신 감독들의 성적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예를 들면 [[이순철|LG 팬들에게 금지어로 찍힌 이 양반이나]] [[박종훈(1959)|좌우놀이에 중독된 돌덩이라던가]] 아니면 [[이종운|맨날 입만 주구장창 털던 이런 놈이라던가]]...1990년에 [[LG 트윈스]]를 우승으로 이끈 [[백인천|백골퍼]]도 외야수로 분류할 수 있지만, 백인천은 본래 포수였고 [[일본프로야구]] 시절 포수로 데뷔해서 활약하다 외야수로 뛰는 일이 많아진 케이스. [[이순철]]도 데뷔 당시 포지션은 내야수였다가 외야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30년 뒤 2017년 [[조원우]]가 외야수 출신 감독으로써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단 준플레이오프에서 NC에 패함으로써 2020년 기준으로는 여전히 장정석과 박영길이 외야수 출신 감독 중에서는 최고 성적.] == 선수 시절 == 1960년대 [[한국실업야구]] 최고의 강타자였던 [[김응용]]에 비견되어, '좌영길 우응용'이라 불리며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김응용]]과는 당시 국가대표 룸메이트로 십수년을 같이 보낸 인연으로 현재도 서로 막말을 하며 지낼 정도로 친한 사이. [[김응용]] 못지않은 [[슬러거]]였지만 정교함까지 갖춘 타자로, [[이승엽]] 이전까지는 올드 야구 팬들에게 국내 최고의 좌타자로 인정받았다. 참고로 실업야구 통산 100홈런 이상을 기록한 네 명의 타자 중 한 명이다. 나머지 3명은 [[박현식]] 옹(前 [[삼미 슈퍼스타즈|삼미]] 감독), [[김응용]], [[김우열]](前 OB-빙그레). 1971년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8게임에서 5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이 우승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실업야구 통산 타격왕 6회, 타점왕 3회, MVP 4회를 수상했으며 철저한 체력 관리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37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했다. == 지도자 시절 ==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093328_700.jpg]]|| ||'''[[최동원]]'''의 롯데 입단식에서. 당연히 오른쪽이 박영길.|| 은퇴 후 [[롯데 자이언트|실업리그 롯데]]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프로야구 출범 직전 해인 1981년 우승'''을 거머쥐었다. 1982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출범 때 부산 야구의 대부로서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을 주도했으며, 초대 롯데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성적 부진으로[* 당시 롯데는 투타 균형이 안좋던 상태였다.타격이 터지면 투수들이 불을 지르고, 투수들이 기껏 잘던지면 '''[[1승만 하라고 스막 시발들아|타선이 침묵하여 지는]]''' 경기가 많았다. 83년에는 [[국가대표]] 투수 최동원, 포수 [[심재원(야구선수)|심재원]]이라는 거물급 스타들을 야심차게 데려왔으나, 막상 시즌에 들어가니 둘은 첫해 부진하면서 성적은 바닥을 찍었다.] 1983년에 중도 사퇴하고 타격코치였던 38세의 [[강병철]]에게 지휘봉을 넘겼다.(롯데는 이듬해인 1984년 불세출의 대투수 [[최동원]]을 앞세워 우승. 지금도 깨지지않은 한국시리즈 진기록인 4승이라는 기록도 혼자 가지고 있다.) 하필 최동원이 아마시절 내내 당한 혹사 후유증으로 부진하자 최동원을 쉬게 해주던 중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는데, 1년만 더 버텼다면 우승 감독으로 남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박영길은 선수 보호 등을 통해 팀 전력의 재건, 보전을 성사시켰지만, 본인의 재임 중에는 성적을 못내고, 후임대에 그 결실을 본 사례였다. 이후 태평양 감독을 지낸 정동진도 비슷한 사례.] >[[최동원]] [[영웅|투수는 20년이나 30년만에 하나 나오는 투수다.]] 두고 보시라고. 30년 후에 롯데에 최동원 투수가 나오겠냐고. >ㅡ1983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재직 당시. [[1984년]]에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로 부임한다. 타격에 있어서는 [[김응용]]과 더불어 국내에서 쌍벽을 이룬다는 평을 받았기에 때마침 삼성으로 부임한 [[김영덕]] 감독이 그를 타격코치로 영입한 것. 그러나 그의 타격이론이 맞지 않다면서 삼성 타자들이 불만이 가지면서 선수단과 갈등이 비화되어 김영덕 감독까지 심기가 불편하게 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선수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은 그해 팀타율 1위를 달성했다. 이후 선수들은 박영길 코치를 신뢰하게 되었다고 선수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박영길은 삼성에서 감독으로 승진하게 된다. [[1984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있었던 져주기 게임 당시, 삼성의 코칭스태프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상대로 롯데를 고르는 것에 대해 반대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실업 롯데 감독으로 있을 당시 이미 [[최동원]]의 실업야구 한국시리즈 활약상을 소속 팀 감독으로서 직접 본 인물이다. 당시 [[최동원]]의 시리즈 성적은 시리즈 6경기에 모두 출전해 2승 1무 2패 1세이브 42와 3분의 1이닝 투구. 그러나 삼성은 84 시즌 당시 최동원과의 대결에서 성적이 괜찮았다는 점을 근거로 박영길의 주장을 기각했고, 결국 [[1984년 한국시리즈]]는 그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말았다.][* 사실 삼성이 롯데를 한국시리즈 멤버로 고른 것은 OB와 김영덕 감독 간에 악연도 있었다. 논란의 감독선임으로 84시즌 내내 OB와 난투극이 일상화된 만큼 김영덕 감독은 도저히 OB를 한국시리즈 상대로 맞닥뜨리기 싫었던 것이다.] 타격코치 시절 계속 팀타율 1위를 달성하자 그 공을 인정받아 [[1987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승진했다. 그 해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팀 타율 3할'''을 달성하며 타격부문에서는 최고의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플레이오프에서 천신만고 끝에 [[OB 베어스]]를 간신히 꺾고 올라온 [[해태 타이거즈]]에게 4연패로 스윕당하며 준우승에 그치는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이 시리즈 1차전에서 당시 좌익수였던 [[장효조]]는 어이없는 실책으로 1차전 패배와 시리즈 완패의 주범으로 몰렸고, 결국 [[1988년]] 시즌 후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고 만다.][* 이 우승이 [[무등야구장]]에서 해태(KIA 포함)가 차지한 유일한 우승이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창단 3년차의 신흥 강호 [[빙그레 이글스]]와 플레이오프에서 붙어 힘 한번 못 써보고 스윕을 당했다. 선동렬을 앞세운 해태는 몰라도, 창단 3년째에 불과했던 빙그레에 패배한 충격은 무척컸고 결국 해임되었다.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뒤에는 해설가로 일하면서 야인으로 지내다가 1991년 시즌을 앞두고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 당시 태평양은 막강한 투수진과 달리 사상 최악이라 할 만큼 형편없는 타선으로 유명했는데, 집요할 정도의 번트, 단타와 작전 위주의 스몰볼에 최적화된 [[김성근]][* 박영길의 삼성 전임 감독이었던 김영덕과 마찬가지로 번트 작전을 자주 구사했다]의 타격 이론과 정반대의 빅볼 성향이었던 박영길은 번트와 컨택 위주의 타격에 길들여진 팀 타선에 체질 개선을 가하여 장타력을 키우기 위해 선수들의 타격 폼을 전면적으로 교정하려고 했다. [[김성근]]이 7.5m로 높혀놓은 도원구장의 펜스를 5m로 내리도록 지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그러나 [[김동기(야구)|김동기]]와 [[김경기]]를 제외하고 박영길 식의 타격 이론을 소화할 만한 선수가 태평양에는 없었고, 투수진 역시 김성근 시절의 혹사로 태평양 주력 투수 3인방(정명원, 최창호, 박정현)이 동시에 부상과 부진을 겪고 있었다. 결국 그해 팀 성적 5위라는 그저 그런 성적과 에이스 [[박정현]]이 김성근 시절 혹사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프런트와의 불화로 1년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 [[정동진]]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원래 정동진은 미국 연수 중에 태평양 코치로 제의를 받았는데, 본인이 감독 출신임에도 박영길 밑이라면 코치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들어와보니 난데없이 박영길이 사퇴해서 나중에 미안했다고 한다.] 성적 5위면 태평양 신화를 썼다는 [[김성근]] 감독 2년차 성적과 동일한 것이고, 5-8-8을 기록한 [[김용희]]나 [[선동열]]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는 건 없었지만, 그해 그 짧은 인천 도원구장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친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1992년 쌍방울의 형편없는 투수진이 140피홈런을 기록했는데, 거기에 비교적 준수했던 태평양의 투수진이 125피홈런을 기록한 것을 보면 인천이 얼마나 타자친화적인 구장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 '''거기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SK창단년도 195피홈런도 이 도원구장에서 나왔다 ~~홈경기 115/원정 80으로 이거 빼도박도 못한다 한경기에 2개씩 맞은 셈~~'''] 이후에는 사실상 현역 지도자로서는 은퇴했으며, 1995년부터 2003년까지 PSB TV 야구 해설위원[* 라디오 해설은 자갈치 김민호가 맡았다.]을 맡기도 했으며, 2011년에는 실업야구연맹 및 일본 독립리그 서울 해치의 회장직 및 [[스포츠서울]] 객원기자를 맡기도 했었다.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그저 그랬지만, 1987년의 삼성 타선에서 볼 수 있듯 타격 이론에서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지도자이며[* [[김성근]] 감독도 타격에 관해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당시 야인으로 지내던 박영길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 [[대한민국]] 야구에서 최초로 작전을 최소화하고 [[장타율]]과 [[출루율]]을 중요시하는 빅 볼 스타일의 야구를 지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박영길 이후로는 [[김용희]], [[김인식]] 감독이 이쪽 계열로 꼽힌다.] 최근에도 단기 인스트럭터 자격으로 여러 팀에서 타격 지도를 했으며 2009년 시즌을 앞두고는 [[최희섭]]의 단기 인스트럭터를 맡아 [[최희섭]]이 슬러거로 부활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런데 2009 시즌 종료 후 가르친 2명의 롯데 타자 [[장성우]]와 [[오장훈]]의 경우에는 2010 시즌 기준 타격이 오히려 떨어지기도... [[http://m.news.nate.com/view/20091108n06624|#당시 기사]] 오장훈은 방출당했고 장성우는 KT로 이적했지만, SNS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와중 2016 시즌 전 스프링캠프에 [[두산 베어스]]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초빙되어 [[오재일]]과 [[김재환(야구선수)|김재환]]을 전담마크해 가르쳤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두 선수 다 2016 시즌에 데뷔 첫 규정타석 시즌을 치뤘는데 둘 다 OPS 1을 넘겼고, 둘이 합쳐 64홈런을 쳐내면서 두산의 새로운 클린업으로 거듭났다. == 여담 == * 충무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최동원]]의 할아버지 때문에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최동원]]을 [[롯데 자이언트]]로 데려온 이가 바로 박영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본인]]도 이 사실을 몰랐다가 최동원과 계약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0jDfW3xe1M|영상 10분 20초 부터]] * 오랜 시간 야구인생을 보낸 덕에 야구 다큐에 야구원로로 얼굴을 자주 비춘다. 그런데 비슷한 또래들인 [[김응용]], [[김인식]] 등과 달리 나이에 맞지않게 패션감각이 꽤 뛰어난 편이다.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감독]][[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41년 출생]][[분류:외야수]][[분류:좌투좌타]][[분류:삼성 라이온즈/역대 감독]][[분류:현대 유니콘스/역대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역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