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명의 독립운동가, rd1=박순석(독립운동가))] [[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30196343.jpg|width=150]] 朴順碩 [[1904년]] [[2월 18일]] ~ [[1992년]] [[2월 27일]] [[대한민국]]의 전 성직자, [[정치인]]이다. 1904년 [[경상북도]] 흥해군 기계면 화봉리(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기계면 화봉리)[* 포항시사 제 3권 제 9편 인물 제2장 인물 544쪽]에서 태어났다. [[대구광역시|대구]] [[계성고등학교(대구)|계성중학교]], [[경성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동노회에서 [[목사]]로 안수받고 흥해교회에서 목사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 이후 [[달성군]]-[[대구광역시|대구시]] 농회 기수, 대구시 시정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청년당]] 김판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1년 전시원호대책중앙위원회에서 피난민 구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서 원내부총무, 경상북도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의 표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한민국 참의원|참의원]] 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61년 [[3.15 부정선거]] 연루를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여담으로 [[신은미]]의 외할아버지다. [[분류:제헌 국회의원]][[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장로회 목사]][[분류:1904년 출생]][[분류:1992년 사망]][[분류:계성고등학교(대구) 출신]][[분류:한신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