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독립운동가, rd1=박수문(독립운동가))] [include(틀:후삼국시대 호족들)] ||||<:><#191970> '''{{{#white 삼중대광 태위[br]{{{+1 박수문}}}}}}'''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91970><#191970> '''{{{#white 향직 품계}}}''' ||<white>원윤(元尹)[br]원보(元甫)[br]대광(大匡)[br]'''삼중대광(三重大匡)''' || ||<:><#191970> '''{{{#white 삼사}}}''' ||<white>'''태위(太尉)''' || ||<:><#191970> '''{{{#white 성씨}}}''' ||<white>박(朴) || ||<:><#191970> '''{{{#white 이름}}}''' ||<white>수문(守文) || ||<:><#191970> '''{{{#white 아버지}}}''' ||<white>[[박지윤(고려)|박지윤]] || ||<:><#191970> '''{{{#white 동생}}}''' ||<white>[[박수경(고려)|박수경]] || ||<:><#191970> '''{{{#white 딸}}}''' ||<white>[[고려의 궁원|월경원]]부인 || ||<:><#191970> '''{{{#white 생몰연도}}}''' ||<white>? ~ ? || == 개요 == [[고려]]의 [[장군]]이자 [[고구려]]계 평주 [[호족]]. [[박지윤(고려)|박지윤]]의 아들이자 [[박수경(고려)|박수경]]의 형이며 [[태조(고려)|태조 왕건]]의 27비 월경원부인(月鏡院夫人)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나 아우와 달리 고려 초창기에 원윤(元尹)을 지낸 것을 제외하면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925년(태조 7년) 아우 박수경이 조물성 전투 승리의 공로로 원보(元甫)로 승진할 때 박수경의 요청으로 원보로 동반 승진하면서 처음 고려사에 이름을 올린다. 후삼국 [[통일]] 직후인 936년 대상으로 승진했으며 943년 태조의 서거 때는 [[염상(고려)|염상]], [[왕규]]와 더불어 태조의 유언을 받들어 [[혜종(고려)|혜종]]의 후견인 역할을 한다. 함께 태조의 유언을 받들었던 염상[* 왕건이 붕어한 이후에는 기록에 일절 나타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해서 그런 것인지 다른 공신들에게 밀렸던 것인지는 불분명.], 왕규와 달리 혜종 사후에도 살아남아 기록에 나오는데 947년([[정종(고려)|정종]] 2년) 대광(大匡)이 되어 덕창진(德昌鎭)에 성을 쌓는 것을 지휘했고 이후 [[장락궁|서경왕성(西京王城)]] 및 철옹[* 鐵甕: [[평안남도]] [[맹산]].], 박릉[* 博陵: 현 [[평안북도]] [[박천]].], [[삼척시|삼척]](三陟)·통덕[* 通德: 현 평안남도 [[숙천]].] 등의 축성 작업을 맡았다. 이를 고려할 때 박수경과 달리 축성에 특화된 공병 사령관 타입이었던 듯하다. 훗날 [[벼슬]]이 태위(太尉)[* 명예직으로 천자의 고문직이다.] 삼중대광(三重大匡)[* 고려 초기의 최고위 정식 품계. 훗날 [[성종(고려)|성종]]이 문산계 품계를 만들어 정식 품계를 대체하면서 '향직 품계'로 이름이 정해지고 명예직으로 바뀐다.]에 이르렀다. == 대중매체에서 == * 2000년작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김경응]]이 맡았다. 단기 접전에서 언월도를 들고 [[김총]]을 제압하는 활약을 보였지만 작중에서는 동생 박수경과 함께 세트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 * 2002년작 KBS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배우 [[김영인]][* 1989년작 KBS 드라마 [[무풍지대(드라마)]]에서 [[김두한]] 역, 태조 왕건에서는 [[벽진 이씨]]의 시조인 [[이총언]] 역을 맡았다.]이 맡았다. 드라마 초반에 태조 왕건이 죽을 무렵에는 [[시중]]을 역임하는 것으로 나오며 [[평산군|평주]]에 머물면서 가끔씩 [[개성특별시|개경]]에 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후 박수경의 아들들인 조카들이 [[역모]]로 인해 처형되고 동생이 자결하자 자연스럽게 극에서 사라진다. [[분류:고려의 외척]][[분류:평산 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