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평양직할시 출신 인물]][[분류:1911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 || 성명 ||박성희(朴星嬉) || || 생몰 ||[[1911년]] ~ ? || ||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직할시|평양부]] 경상리 || || 사망지 ||미상 || || 추서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성희는 1911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양부 경상리 출신이다. 그녀는 [[경성여자상업학교]]에 재학하던 1929년 2월 10일 [[시천교]] 경성청년회(京城靑年會)에서 문태섭(文泰燮)·박정석(朴貞錫)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7월 시천교학생회(侍天敎學生會) 하계 순회강연회를 계획했다. 이일신(李一信)과 함께 남쪽지방을 담당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박성희는 이에 호응하기 위해 1930년 1월 16일 오전 10시 30분경 동교생 김어진(金於眞) 등과 함께 동맹휴교에 합세하였다. 그리고 타교 학생들과 연계하여 광주학생운동을 동정하는 동맹휴교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경성여자상업학교]]의 유리창이 깨지고 학생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맹렬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녀는 [[종로경찰서]]에서 경찰범처벌규칙 제1조 제39호에 의거하여 구류 20일에 처해졌다가 1월 29일 동료학생들과 함께 가출장(假出場)으로 석방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박성희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