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북한이탈주민]][[분류:북한의 인물]][[분류:1968년 출생]][[분류:혜산시 출신 인물]][[분류:일베저장소/관련 인물]][[분류:사회운동가]][[분류:나무위키 북한 프로젝트]] [[분류:피고인]][[분류:량강도 출신 인물]] ||<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 bgcolor=#fff,#1F2023><-2><:> [[파일:external/ph.kyeonggi.com/933827_858241_2253.jpg|width=100%]] || || '''이름''' ||박상학 || ||<|2> '''출생''' ||[[1968년]] [[2월 16일]] ([age(1968-02-16)]세) || ||[[북한]] [[량강도]] [[혜산시]] || || '''학력''' ||[[김책공업종합대학]] {{{-2 (퇴학)}}} || || '''직업''' ||북한 인권운동가 || [목차] [clearfix] == 개요 ==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 인권운동가를 자칭한다. [[1968년]] [[2월 16일]] 북한의 [[량강도]] [[혜산시]] 출생으로 북한의 [[명문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했으나 예비과 과정을 4개월 다니고 학업 성적이 낮아 [[퇴학]]당했다. 김일성사회주의노동자청년동맹 청년돌격대 선전지도원을 역임한 바 있다고 한다.[* 북한 체제의 특성을 볼 때, 이런 이력을 고려하면 그는 북한에서 꽤나 특권층 자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1998년]] 탈북하여 [[1999년]]에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숙부들이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사망했고 사촌들은 [[꽃제비]]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96&aid=0000138819|출처]] ] 2005년부터 북한의 독재 정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대북전단 배포 등의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2013년에 [[노르웨이]]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창의적 반대운동을 위한 바츨라프 하벨상'(Vaclav Havel Prize for Creative Dissent)[* [[바츨라프 하벨]]은 체코의 극작가이자 민주화운동가, 정치인.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적극적으로 공산독재에 맞서 싸웠으며, 공산권 붕괴 이후 민주화된 체코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을 [[http://www.newfocus.co.kr/client/news/viw.asp?cate=C04&mcate=M1001&nNewsNumb=201308441|수상하였다.]] == 논란 및 사건사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박상학/논란 및 사건사고)] == 비판 == > '''북조선 마인드에서 편만 바꾼다고 남조선 사람 되는게 아니다''' - [[진중권]] 위 과거 진중권의 말은 탈북자 출신의 영화감독 [[정성산]]과 [[트위터]] 상에서 벌인 논쟁에서 나온 말인데 이 말만큼 박상학을 잘 표현하는 말도 없다. 박상학이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다 '''북한의 마인드를 가진 채로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0000340|링크]] 일단 2014년에 이중간첩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당한 전적이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그가 보인 행태로 볼 때는 이중간첩이라기보다는 남한 사회에 부적응이 주 원인으로 생각된다. 앞 단락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탈북자들은 대한민국의 체제나 사회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이를테면, 개인사유지에 들어가서 "여기가 대한민국 땅이지 당신네 땅이냐"라고 한다던가, 국가의 이익과 이념투쟁을 위해서 개인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마인드라던가. --[[전체주의|남한이 아니었다면]] 굉장히 모범적인 [[노예근성|마인드]]였을지도...--] 대체로 첨예한 대립이 오래동안 지속된 두 세력의 사이에서, 하나의 진영에서 반대편 진영으로 옮기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게 된다.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서는 용서 못할 배신자 취급을 받게 되며, 새로 몸담게 된 곳에서도 적성국가에서 넘어왔다는 사실로 인해 간첩이 아닌지 의심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한 혐의가 풀린다고 할지라도 '조국을 버리고 온 사람', '자기 주변을 내팽개치고 혼자 도망온 사람'으로 비치는 등 부정적인 시선은 늘상 존재하며, 설령 실제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편집증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결국, 한 번 '배신'을 하고 떠나온 사람은 새로 몸담게 되는 곳에서의 경멸을 피하고, 자신이 보호받고 대접 받을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람임을 설득하기 위하여 자신이 떠나온 곳을 정말 죽어라 까며, 새로 넘어온 곳의 체제에 대해서는 과잉충성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삐라 쇼를 남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인접한 곳에 살아서 누구보다도 전쟁의 위협을 느끼고 있고 북한을 혐오하는 파주 북부 농촌 지역 사람들조차 왜 삐라 살포를 저지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북한 사람들의 탈북을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삐라,대북 방송이기 때문에 박상학 입장에서는 삐라 살포에 목숨을 거는 것을 이해 할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