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fix grammar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수작, 습작]][[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관료]][[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정치]][[분류:일본의 자작]][[분류:1905년 출생]][[분류:1974년 사망]][[분류:일제강점기의 인물]][[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반남 박씨]] [include(틀:조선귀족)] [목차] == 개요 == 朴富陽 1905년 ~ 1974년 일제 강점기 시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관료. 본관은 반남(潘南). == 생애 == 1905년 6월 7일 서울에서 [[을사오적]]이자 [[경술국적]]인 [[박제순]]의 아들로 태어났다. 11세가 되던 1916년 박제순이 사망하자 자작 작위를 물려 받는다. 1923년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까지 [[한성은행]] 대주주였다. 1925년 종5위, 1932년 정5위를 거쳐 1937년 종4위에 올라 [[전라북도]] 임실군수와 금산군수를 지냈다. 1943년 정4위에 올라 해방 때까지 [[경기도]] 안성군수로 재직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많은 부를 누리며 생활했으며, 20살이던 1925년에는 당시엔 드물던 [[오토바이]]를 타다가 2번이나 사고를 내 신문에 기사가 나기도 했다. >'''청년 자작이 봉변''' >'''자동자뎐거를 타고 가는 길에 떠러저 욕보고 경관 주의까지''' > >동소문안 혜화동 륙십삼번디 박부양이라는 청년 자작은 재작일 오후 네시경에 자기의 친구 리모(李某)와 함께 '오트바이'를 운뎐하야가지고 총독부병원 문전을 통과할 때에 마츰 그 병원 안으로 나오던 평산목장 마차와 충돌되야 운뎐하던 박씨는 땅우로 떠러저 바리고 운전수 업는 '오트바이'만이 굴러나가다가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리원희의 처 곽씨와 충돌되야 곽씨는 외인편 다리에 일개월 동안 전치할만한 큰 중상을 당하엿다는데 박 자작은 동대문서로부터 주의를 밧고 방면되엿다더라. (동아일보 1925년 5월 19일자) >'''자작 탄 자동자전거와 충돌''' >'''량편 모다 부상''' > >지난 십사일 오후 두시 사십분 경에 시내 광화문통 경찰강습소 압헤서 시내 혜화동 일백륙십삼번디 박부양 자작과 김성긔 두 사람의 탄 자동자전거와 시내 태평통 석탄상 고용인 리홍창의 탄 자뎐거와 충돌되야 자전거 뒤 박휘가 파손되고 리홍창은 이마와 입에 타박상을 밧고 일시는 혼수상태에 빠젓슴으로 직시 서린동 지성윤병원에서 응급치료를 한 후 세부란쓰병원에 입원케 하얏는데 약 일주일간의 치료를 요한다하며 전긔 박부양 자와 김성긔도 각각 경상을 당하앗다더라 (동아일보 1925년 12월 17일) 1937년 동요회[* 친일 단체. 조선 귀족들의 모임이다.]에서 이사를 맡았다. 당연히 1949년에 [[반민특위]]에 의해 조사를 받았지만 반민 특위의 와해 이후 풀려났다. 1974년 4월 20일 사망했다. == 가족 관계 == * 조부 : 박홍수 - 조선 후기의 관리이다. * 아버지 : [[박제순]] * 아들 : [[박승유]] -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친일에 죄책감을 느껴 [[독립운동가]]로 전향한다. == 기타 == [[박완서]]의 작품에 언급되는 자작영감이 이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