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5공화국의 국무위원)] [[파일:박봉환.png]] * 朴鳳煥 * [[1933년]] ~ [[2000년]]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기획재정부|재무부]] 차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동력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 상세 == 1933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부]] 출생.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서중학교]] 및 [[광주고등학교(광주)|광주고등학교]] 졸업 후, [[1953년]]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동기생으로는 [[노재봉]] 전 국무총리 등이 있다.] 대학 졸업 후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공직에 입직하였다. [[기획재정부|재무부]] 입부 후에는 [[감사원]] 회계검사관, 김포[[세관]]장 등의 보직을 거쳤으며, [[공무원/계급#s-3.2.1|사무관]], [[공무원/계급#s-3.2.2|서기관]] 시기 [[1963년]] 제정된 [[감사원|감사원법]]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재무부의 법률통이라는 평판을 쌓았다. [[1970년]] 재무부의 대표 요직 중 하나인 이재국장[*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상당]에 발탁되었으며, [[1976년]]에는 제1무임소장관실의 수도권인구정책실장을, [[1977년]]에는 [[대통령비서실]] 중화학공업기획단 부단장을 역임하은 등, 1970년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주요 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1980년]] 재무부 차관으로 기용되었고, 같은 해 [[산업통상자원부장관|동력자원부 장관]]으로 영전하였다.[* 광주 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시 언론에서는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이 남긴 민심 이반을 수습하기 위한 인사로 평가하기도 하였다.([[경향신문]] 1980년 9월 2일, 2면)] 장관 재직 시에는 [[1981년]] 연탄업체의 저질 [[연탄]] 공급으로 인한 부당이득 수취가 사회 문제화 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982년]] 장관 퇴임 후 [[금융감독원장|증권감독원장]]에 임명되어 자신의 전문분야이기도 한 금융업계로 복귀하였다. [[1988년]]까지 약 7년 간 재임하면서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던 한국 증권시장의 선진화에 기여하였다. 증권감독원장 퇴임 후에는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 [[동아그룹]]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2000년]] 별세. == 경제관 == [[김재익]]과 함께 [[전두환]]의 경제 과외교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통 [[경제관료]]이면서도 "현대자본주의" 등 학술서를 펴내기도 하였는데, [[사회주의]]에 대적하면서도 한편으로 시장에 일정 부분 개입할 수밖에 없는 [[개발독재]] 시대의 경제관료가 지닌 딜레마가 드러나 있다. == 가족 ==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손녀사위이다.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인]]은 그의 처남. [[분류:전두환 정부/인사]][[분류:1933년 출생]][[분류:2000년 사망]][[분류:광주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재무부 차관]][[분류:동력자원부 장관]][[분류:광주고등학교(광주) 출신]] [[분류: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