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30401145.jpg|width=150]] 朴晩元 1911년 ~ 1982년 11월 7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구산(龜山).[[https://m.blog.naver.com/pjh6497/40053728438|#]] [[사위]]는 제8대~제11대 [[국회의원]]([[신민당(1967년)|신민당]]-[[민주정의당]])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한병채]] [[변호사]]이다. 1911년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났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반에 식산[[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전주시|전주]]지점장, [[목포시|목포]]지점장, [[대구광역시|대구]]지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자유당 중앙당 정책위원으로도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부정선거]]로 기소되었고 1961년 초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혁명재판]]에서는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이후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63년 석방되고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군위군-[[선산|선]][[구미시|산]][[군(행정구역)|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봉환(1921)|김봉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대일상호신용금융을 경영하였다. [[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무소속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군위군 출신 인물]][[분류:1911년 출생]][[분류:1982년 사망]][[분류:구산 박씨]][[분류:서울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