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진주시 출신 인물]][[분류:1901년 출생]][[분류:1971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박덕실.jpg|width=300px]] || || 성명 ||박덕실(朴德實) || || 생몰 ||[[1901년]] [[3월 4일]] ~ [[1971년]] [[3월 1일]] || || [[출생지]] ||[[경상남도]] [[진주시|진주군]] 진주면 평안동 || || 사망지 ||[[경상남도]] [[진주시|진주군]] || || 추서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한규상]]의 부인이다. 딸인 한원주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은 최고령 의사로 활동하다가 2020년 9월 30일 소천했다. [[https://news.v.daum.net/v/20201005115139056]] == 생애 == 박덕실은 1901년 3월 4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평안동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19년경 평안동에 있는 기독교 계통의 광림학교(光林學校) 교사로 근무하던 중 동향의 친구 박보교(朴寶喬)의 권유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진주지부에 가입하였다. 이후 9월에 대한적십자회 대한지회 진주지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고, 10월에 [[홍수원]] 등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비밀결사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했을 때 광림학교 내 자택이나 기숙사를 회합의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9년 11월 대한애국부인회가 경상북도 경찰부에 발각되면서 여러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뒤 12월 26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한규상]]과 결혼한 그녀는 1920년 당시 통영부인회(統營婦人會)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4월 30일 통영부인회 제1회 강연회에서 「조선 여자여, 춘몽(春夢)을 각성(覺醒)하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또한 1923년 당시 진주기독교여자청년회 회장으로서 여자해방강연회(女子解放講演會) 개최, 삼가여자야학(三嘉女子夜學) 설립 등 각종 사회활동과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12월 2일 진주에 독립적인 여자보통학교(女子普通學校)의 설립을 목표로 하는 실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진주여자청년회 임원으로 활동하던 1926~27년에도 야학회를 개최하는 등 진주지역의 여성교육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7년 4월 7일 근우회 진주지회 설립대회에서 임시의장으로서 대회를 이끌었으며, 그 자리에서 신임위원(新任委員)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31년에서 1934년까지 마산의신학교 교원으로 근무했고, [[8.15 광복]] 후인 1947년부터 1971년까지 진주한일병원 원장 한규상의 사모로서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1971년 3월 1일 진주시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박덕실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