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창원시 출신 인물]][[분류:1924년 출생]][[분류:1989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박대근.jpg|width=300px]] || || 성명 ||박대근(朴大根) || || 생몰 ||[[1924년]] [[1월 4일]] ~ [[1989년]] [[9월 20일]] || ||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시|창원군]] 창원면 중동리 || || 사망지 ||[[경상남도]] [[창원시|창원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대통령 표창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대근은 1924년 1월 4일 경상남도 창원군[* 현재의 [[창원시]]] 창원면 중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2년 7월 창원면 동정리 소재 창원신사(昌原神社) 후편에서 창원보통학교(昌原普通學校) 출신의 급우 [[박상규(1929)|박상규]], [[김광수(독립운동가)|김광수]] 등 10여 명과 함께 조국독립을 목적으로 청년독립회(靑年獨立會)를 조직하여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면서 1943년 4월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창원역과 주요 관문에 붙임으로써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1944년 12월 그들의 활동이 진해 헌병대에 의해 발각되었고, 일제는 이 일을 ‘창원만세사건’이라 불렀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이첩 계류되어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여 부산 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이후 창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9년 9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대근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고, [[2011년]]에는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