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박기로(朴基魯) || || 이명 ||박기로(朴埼魯) || || 본관 ||[[고령 박씨]][* 부창정공파.[[http://goryeong.grandculture.net/goryeong/toc/GC029C030103|#]]][[http://goryeong.grandculture.net/goryeong/toc/GC02900930|#]] || || 생몰 ||[[1871년]] [[7월 15일]] ~ [[1938년]] [[1월 7일]] || || [[출생지]] ||[[경상도]] 고령현 하미면 도진동[br](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고령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경회]]·[[박쌍암]]·[[박영순(1888)|박영순]]·[[박영우]]·[[박영화(1880)|박영화]]·[[박정렬(1890)|박정렬]]·[[박채환]]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경상북도]] [[고령군]]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기로는 1871년 7월 15일 경상도 고령현 하미면 도진동(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전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고령군에서도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4월 8일 밤 우곡면 대곡리에 사는 한이군(韓二君) 외 여러 청년들에게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후 4월 8일 밤 11시, 박기로는 나팔을 불어 주민 50명을 불러모은 뒤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에 고령주재소 순사들이 출동해 그를 비롯한 주동자 6명을 체포했다. 그 후 박기로는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는 고향에서 조용히 지냈으며 1938년 1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기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고령 박씨]][[분류:고령군 출신 인물]][[분류:1871년 출생]][[분류:1938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