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논산시 출신 인물]][[분류:1894년 출생]][[분류:1971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 || 성명 ||박금봉(朴今奉) || || 생몰 ||[[1894년]] [[1월 1일]] ~ [[1971년]] [[4월 3일]] || || [[출생지]] ||[[충청남도]] [[논산시|논산군]] [[강경읍]] 황금리 || || 사망지 ||[[충청남도]] [[논산시|논산군]] || || 추서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금봉은 1894년 1월 1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 황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무렵 부여군 세도면 사립 창영학교에서 교사로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1919년 3월 6일, [[엄창섭(독립운동가)|엄창섭]]이 그를 찾아와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이를 기꺼이 수락하고 [[고상준]], 추병갑(秋炳甲)·김종갑(金鍾甲) 등과 함께 3월 10일 강경읍 장날에 만세 시위할 것을 계획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9일 김종갑(金鍾甲)·추성배(秋聖培) 등의 협조를 받아 10일 아침까지 태극기 200개를 만들었다. 가마니에 넣은 태극기는 서삼종(徐三鍾)이 강경면 옥녀봉에 운반하였다. 오후 3시 박금봉·정기섭(鄭沂燮) 등은 옥녀봉에 모여 [[태극기]]를 꺼내 모여든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태극기를 높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도 들고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옥녀봉을 내려와 강경시장에 이르러 그 곳의 군중과 합세하여 가두행진을 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이후 논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1년 4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박금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