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070612110643197420002.jpg|width=150]] [[파일:external/rokps.or.kr/1294.jpg|width=150]] [[1932년]] [[3월 12일]] ~ 朴權欽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이다. 호는 우사(又史)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1932년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각북국민학교 졸업 후 한문을 수학하다 부산 고려속기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속기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특수과정을 수료하였다. [[경향신문]]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정치부 차장까지 역임하였다. 1970년 [[신민당(1967년)|신민당]]의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 전당대회 때 [[김영삼]]의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김영삼과 인연을 맺었다. 1974년 9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되어 1976년까지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시]]-월성군-청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박숙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8월 [[YH 사건]] 때는 동료 의원 및 당직자들과 함께 경찰 진입을 막다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폭행당하기도 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김순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건설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일윤]]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7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문교공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의 [[전두환]] 색깔 지우기에 의해 공천 탈락하였다. 이후 [[한국도로공사]] 이사장, [[대구일보]] 사장, 한국차인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분류:제11대 국회의원]][[분류:제12대 국회의원]][[분류:민주정의당 국회의원]][[분류:기자]][[분류:청도군 출신 인물]][[분류:1932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