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국회사무총장)]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580009><bgcolor=#580009><tablebgcolor=#f5f5f5,#1f2023>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휘장(9대-19대).png|width=30]]]] {{{#cfa547 '''[[대한민국 국회의원|{{{#cfa546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특별시|{{{#cfa547 서울}}}]] [[강서구 갑|{{{#cfa547 강서구 갑}}}]])'''}}} || ||<width=30%> 제13대[br][[이원배]][* 1992.2.28 의원직 상실(뇌물수수)] ||<width=5%> → ||<width=30%> '''제14대[br]박계동''' ||<width=5%> → ||<width=30%> 제15~17대[br][[신기남]] || ||<-5><bgcolor=#580009>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휘장(9대-19대).png|width=30]]]] {{{#cfa547 '''[[대한민국 국회의원|{{{#cfa546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특별시|{{{#cfa547 '''서울'''}}}]] [[송파구 을|{{{#cfa547 '''송파구 을'''}}}]])''' }}} || ||<width=30%> 제16대[br][[김성순]] ||<width=5%> → ||<width=30%> '''제17대[br]박계동''' ||<width=5%> → ||<width=30%> 제18·19대[br][[유일호]] ||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1507161707242061.jpg|width=150]] 朴啓東 1952년 6월 26일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密陽). == 생애 == 민주화 운동가 출신 정치인으로, 1952년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 [[권경석]] 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0050783|#]]에서 태어났다. 서울 [[보성고등학교(서울)|보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적도 있었고 1980년대 민주화청년연합(민청련) 설립 후 집행위원[* 당시 의장은 [[김근태]], 부의장은 [[장영달]]이었다.]이었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등의 재야단체에서 활동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4000억 원 [[비자금]] 건을 폭로하였다. ||<table align=right><table width=3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112002632_0.jpg|width=100%]]}}}|| ||국회에서 노태우 비자금 혐의 증거를 폭로하는 모습. 이 장면은 노태우의 구속,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회|신군부]] 주요 인사들의 법정 심판, 그리고 [[김영삼|YS]]의 14대 대선자금 문제까지 이어졌다. 의장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황낙주]] 당시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이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신기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선거에서 낙선하고 나서 통합민주당 낙선자들과 함께 1997년 3월 하로동선 식당을 창업하여 1999년까지 운영한 적이 있다. [[노무현]], [[유인태]], [[김원웅]] 등과 함께 사업을 같이 했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었는데 누수되는 비용들이 많아서 남는게 별로 없었다고 한다. 이후 통합민주당 [[이기택]] 총재의 당 운영 노선을 비판하며 [[김원기(1937)|김원기]], 노무현, [[김정길(1945)|김정길]] 등과 통합추진국민회의(통추)를 조직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당내 대선후보 출마 문제와 내홍을 겪었고, DJ의 패권정치[* 1992년 대선의 패배로 정계은퇴했던 김대중은 1995년 정계복귀하고 자신의 계파를 중심으로 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창당과 동시에 제1야당이 되었다.]와 3김 정치에 대한 반대의 기치를 걸고 [[신한국당]]과 통합하면서 [[한나라당]]이 되자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1995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대처와 검찰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가두연설을 하고 다녔는데, 당시 유세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서울 [[종로구]]에서 [[노무현]]이 이 가두시위의 연사를 맡았는데 "이 썩은 3김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이 종로에 노무현을 당선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는데 그 발언 자체가 사전 선거운동으로 적발되었다. 당시에는 사전 선거운동기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발언을 한 노무현을 처벌하지 않고 박계동이 사전선거운동으로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벌금 600만 원을 선고받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박계동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서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 및 정부 비리에 대한 폭로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 일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다.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하자, 박계동은 "억울하게 출마길이 막혔으니 사면복권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니가 한나라당 소속으로 있는 한 안 된다. 새정치국민회의로 오면 해주겠다. 그리고 좋은 지역구에 뒷배까지 봐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https://youtu.be/8U-PbjsIc3M|출처]] 결국 사면, 복권을 영영 받지 못하게 된다. 이후 몇 년 동안 [[택시 기사]]로 일했다. 2003년 2월 7일에 고 [[제정구]] 의원의 추모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한나라당으로 간 통추 인사를 권세와 이익을 쫓아간 이들이라고 비판한 것을 사죄한다."[* 원문은, "지난 대선 때 통추 인사 가운데 한나라당을 택했던 사람들을 두고 '권세와 이익을 쫓아갔다'고 말한 것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 당시 방송연설 원고에 [[제정구|정구 형]] 등 사람을 특정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돼있어서 그냥 읽었던 것인데 나중에 젊은 동지로부터 직접 항의를 받고 보니 유족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사과와 양해를 구한다. 내가 추모식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다."이다.]라는 발언을 하자, 박계동은 "노무현보다는 제정구가 옳았습니다. 무슨 변명을 그렇게 해!"라고 노 당선인을 향해 고함을 쳤다. 노 당선인은 이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유인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자는 박계동을 향해 "누가 누구에게 그런 얘길 하냐!"고 쏘아붙였다.[* 사실 노 당선인의 사과에 제정구 의원 유가족 및 '''[[김부겸]], [[김홍신]], [[이부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까지도 박수를 쳤을만큼 진정성을 인정받았던 것으로 볼 때 박계동의 돌발 행동은 분명 일부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런 사건 외에도, 2006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 방문하자 완전히 무시하는 등 박계동과 노무현은 1999년 이래로 완전히 원수가 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5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행사에서 [[이재정(1944)|이재정]] [[통일부장관]]에게 폭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일호]]에게 밀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후술할 성추문 논란과 과격한 언행들이 공천탈락의 요인이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국민생각]]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유일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11년 분당구 재보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강재섭]] 후보가 공천되면서 본선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택시기사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서 2015년 [[쿱택시]] [[이사장]]에 취임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택시 기사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개선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으나... [[제수]]를 경리부장, [[처남]]을 [[구미시|구미]]쿱택시 이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기존 택시회사 사장들의 구태를 답습했고, 결국 2018년 4월 조합원 비상총회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당했다. == 논란 == 2006년 5월 초 [[https://mnews.sbs.co.kr/news/endPage.do?newsId=N1000106160|동영상 하나가 웹에 급속히 퍼졌고]] 이것으로 정치인생이 사실상 끝나 버렸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이 영상을 보고 [[http://www.redian.org/archive/12416|평론]]을 쓰기까지 했다. == 선거 이력 ==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tablebordercolor=#808080><rowbgcolor=#808080><rowcolor=#fff> 연도 || 선거종류 || 선거구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2> 서울 [[강서구 갑]]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32,190 (33.93%)''' || '''당선 (1위)''' || 초선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include(틀:통합민주당(1995년))] || 26,358 (29.88%) || 낙선 (2위) ||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2> 서울 [[송파구 을]] || [include(틀:한나라당)] || '''40,697 (49.51%)''' || '''당선 (1위)''' || 재선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include(틀:국민생각)] || 4,035 (4.03%) || 낙선 (3위) || || == 둘러보기 == [include(틀:제17대 국회의원/서울특별시)] [[분류:1952년 출생]][[분류:제14대 국회의원]][[분류:제17대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91년) 국회의원]][[분류:통합민주당(1995년) 국회의원]][[분류:한나라당 국회의원]][[분류:산청군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분류:국회사무총장]][[분류: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분류:고려대학교 출신]][[분류:친이]][[분류: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