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1024px-BASF-Logo_bw.svg.png]] [목차] == 개요 ==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순수 종합화학 기업.[* '순수'라는 단어가 붙은 건 [[다우케미칼]]과 합병한 듀폰 때문이다. [[듀폰]]은 화학 산업 외에도 농생명 분야까지 아우르는 생명공학기업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합성수지, 고무, 스펀지, 단열재 등 [[석유화학]] 제품이나 화학비료 등을 주로 생산한다. == 발음 == 한국어, 중국어 외의 언어로 읽을 때에는 '''절대 바스프라고 읽지 않는다'''. 이 회사명을 발음할 때는 영어로는 B(비) A(에이) S(에스) F(에프) 알파벳 하나 하나 다 읽어주고, 독일어로는 --B(베) A(아) S(에스) F(에프)가 원칙적으로 맞으나...-- 베에세프 또는 비에세프 라고 직원이나 관계자가 발음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https://youtu.be/yJESJyslgPo?t=59|직접 들어보자.]] 바스프라고는 안 들린다. 만약 영어나 독어로 이 회사의 채용담당자와 면접을 본다면 정확한 발음은 필수다!]. 심지어 일본어로도 ビーエーエスエフ (비-에-에스에프) 라고 읽는다. 즉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 회사를 바스프라고 칭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 적어도 한국에서는 바스프로 발음이 굳혀진 듯. 공식 홈페이지에 "한국바스프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써 있다. [[https://www.basf.com/kr/ko.html|한국바스프 홈페이지]] == 역사 == 1865년 프리드리히 엥겔호른(Friedrich Engelhorn)이 만하임에 세운 바디셰 아닐린 & [[소다|조다]]-파브릭('''B'''adische '''A'''nilin & '''S'''oda-'''F'''abrik)에서 출발했다. 그 두문자를 딴 것이 BASF. 설립자인 프리드리히 엥겔호른은 1821년 맥주 양조장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사립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도중에 학업을 그만두고 금세공을 배워 금세공인이 된다. 그러던 중 [[3월 혁명|1848년 혁명]]의 영향으로 사업이 난항을 겪자 금세공 일을 포기하고 가스등에 사용되는 가스를 공급하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가스 생산 과정의 부산물로 [[타르]]가 생산되었는데 영국의 화학자이자 기업가인 윌리엄 헨리 퍼킨 경은 이 [[타르]]에서 아닐린을 분리하여 염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엥겔호른은 이 사실을 알고 영국의 화학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독일의 화학자 하인리히 카로를 불러들여 독일에 아닐린과 염료를 생산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BASF이다. 본래 회사는 독일 만하임에 위치하였으나 염료 생산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우려한 시 당국이 공장 설립을 불허하자 루드비히스하펜으로 회사를 이전하였다. 이후 소다, [[암모니아]] 등 제품군을 확장했다. 1925년 독일의 화학자이자 BASF의 경영자인 카를 보슈[* 오늘날 독일의 거대 기업집단인 [[보쉬]]의 보쉬 가문 출신이다. [[보쉬]] 설립자인 로베르트 보쉬의 조카가 카를 보쉬. 참고로 [[프리츠 하버]]와 함께 하버-보슈법을 개발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에 의해 [[바이엘 주식회사|바이엘]], [[아그파]], 획스트와 합쳐져 [[이게파르벤]]을 구성했다. 이후 독가스인 '치클론 B'를 생산하여 나치 포로수용소의 수감자들을 처형하는 데 일조하였다. 1935년에는 AEG와 함께 최초의 테이프 레코더인 [[오픈릴 테이프|마그네토폰]]을 개발하여 나치 선전에 도움을 주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BASF는 루드비히스하펜과 오파우 지역에 위치한 화학 공장에서 [[고무]]와 [[휘발유|가솔린]]을 생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로 인해 [[연합국]]의 주요 타겟이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65회의 공습을 당했으며 공장 직원들이 전쟁으로 인해 징집된 탓에 직원들이 전쟁포로들로 대체되었다. 종전 이후 두 공장은 [[프랑스]]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이게파르벤]]은 강제로 해체되었다. 전후 시기에는 BASF의 화학자인 카를 부어스터[* [[나치 독일]]의 고위층이었기에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가 경영책임자로 회사를 운영하였다. BASF는 50년대 [[나일론]]을 생산하여 경제회복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오늘날에는 화학 제품군을 다변화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현재까지 화학 산업에서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엥겔호른 가문 == 설립자 가문인 엥겔호른 가문은 오늘날의 BASF와는 더 이상 관련이 없다. 하지만 설립자인 프리드리히 엥겔호른이 인수한 제약회사 베링거 만하임(Boehringer Mannheim)을 가문 구성원들이 소유하다가 1997년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에 110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오늘날까지 독일의 재벌 가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엥겔호른 가문은 언론 노출을 기피하는 탓에 해당 가문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 == 활동 == 석유로 만들 수 있는 모든 화학제품은 다 만든다. 한때는 [[플로피 디스크]]나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도 생산.[* [[http://www.emtec-international.com/en/company-profile|EMTEC의 연표]]를 보면 [[이게파르벤]] 시절인 1930년대부터 시작한 것으로 돼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아그파]]와 BASF모두 [[오픈릴 테이프]]를 생산했다는 [[https://www.bruynooghe.fr/public/effets_vintage/Agfa-BASF_spec.pdf|기록]]이 있다. [[https://www.basf.com/ca/en/who-we-are/history/1990-2014.html|1991년]]에는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아그파 게바트]]의 마그네틱 테이프 사업부를 인수했다. 1996년 BASF 마그네틱스라는 자회사로 분사했다가 1997년에 [[고합그룹]]에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1997012401981|인수된 시점]]부터 사명을 EMTEC으로 변경한다. 이후 외환위기로 고합그룹이 [[https://www.k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981|EMTEC을 매각]]하고 여기저기 팔려다니다가 2006년에 프랑스의 Dexxon 그룹에 인수된다. 현재 EMTEC의 본사는 프랑스에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IG 파르벤 시절 BASF제 화학비료가 수입판매되었던 적도 있었다,[* [[https://blog.naver.com/pcm8227/221403604062|#]]. 쇼와 6년(=1931년), 당시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 연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안산, 울산, 군산, 여수 등에 공장을 세우고 플라스틱, 스티로폴, 비타민 등을 생산한다. [[https://www.basf.com/kr/ko.html|한국바스프 홈페이지]] 특히 라이신 부문은 1998년 [[대상(기업)|대상]]으로부터 인수했으나 2007년 백광산업으로 넘겼다가, 2015년에 종갓집뻘인 대상이 다시 사들였다. [[아디다스]]에서 나오는 [[아디다스 부스트 시리즈|부스트 폼]]이 BASF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소재이다. 상당히 편안하고 푹신하면서 반발력까지 잡은 신소재인데, BASF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보통의 모델보다 비싸다. [[분류:독일의 기업]][[분류:전범기업/나치 독일]][[분류:1865년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