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gnerian''' [목차] == 개요 == >① (형용사) 독일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관련 있거나 그가 쓴 음악, 음악 이론 또는 극음악 작곡 이론과 관련 있는 >② (명사) '''바그너 숭배자 또는 지지자''' >---- >― 옥스퍼드 영어 사전 열렬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빠'''들을 일컫는 말.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에서 [[클래식]] 업계의 가장 열렬한 빠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바그네리안 이전에도 '[[모차르티안]]'이라는 용어가 있었다고 하나 바그네리안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일종의 '신도'라는 느낌까지 갖는 낱말은 아니었다고 한다.[[http://wagnerianwk.blogspot.com/2010/01/%EB%B0%94%EA%B7%B8%EB%84%A4%EB%A6%AC%EC%95%88wagnerian%EC%9D%B4%EB%9E%80.html|#]] 그와 동시대 인물인 리스트도 [[리스토마니아]]라는 광적인 팬덤을 보유하였다. == 상세 == === 그들의 모습 === 물론 어느 예술가나 유명인이든 빠는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바그네리안들은 그 정도가 상당히 심하다(...)는 평이 중론. 거의 종교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바그너의 악극을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가는 일을 바이로이트를 순례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빠들은 생가에 한번 방문할지언정 꼭 '''어느 특정 공연장'''에 가서 그들의 음악을 들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그네리안들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성지순례를 최고의 목표 중 하나로 삼는다.[* 물론 이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이 바그너의 악극에 최적화된 구조를 자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그너 덕후가 되는건 결코 만만치 않다. 바그너의 악극은 기본 몇시간이 넘는 길이에 쉽게 들을수 있는 음악도 아니다. [[니벨룽의 반지]]의 경우에는 4일에 걸쳐 무려 16시간이나 되는 길이를 자랑한다. 그 모든것을 이기고 바그너 악극에 빠져들어야 바그네리안이라 할만하다. ~~그래도 [[빛(오페라)|연주 계획도 없는 곡]]이 빨리 연주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낫다~~ 니벨룽의 반지가 한국에서 초연되었을 때 바그네리안들이 '''근처 분식집에서 먹을거리를 사와서''' 공연 중간 휴식시간에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바그너 덕후들은 지금 보면 후덜덜한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당대 음악가들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전 세계를 파멸로 끌고간 [[아돌프 히틀러]]도 열렬한 바그네리안이었다. 히틀러는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 악극을 감상하면서 프랑코가 보낸 스페인 국민진영의 사절을 만나서 [[스페인 내전]]의 지원을 협의했을 정도니(...) === 바그너와 반유대주의 === '바그너=반유대주의자' 딱지가 붙은 직접적인 계기는 바그너가 "음악 속 유대주의"("Das Judenthum in der Musik")라는 글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바그너는 노골적인 반유대주의를 드러내며 음악계에서 유대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바그너가 이 글에서 공격하려고 했던 진짜 목표는 유태인 전체가 아니라 [[멘델스존]]과 [[마이어베어]]였다. 멘델스존은 '[[엄친아]]'라서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고, 마이어베어는 바그너와 음악적으로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마이어베어는 어려운 시기의 바그너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던 은인이었는데, 바그너는 출세한 후 소시적에 섭섭했던 몇몇 사소한 사안들을 가지고 마이어베어를 험하게 비난하고 다녔다. 마침 두 사람 다 유대인이라서 당시 반유대주의 정서를 업고 공격하기 딱 좋았다. 바그너의 가족들도 히틀러 지지자였다. 예를 들어 며느리 위니프레드 바그너는 히틀러와 친했다. 여기에 히틀러가 바그너 덕후였다는 사실까지 더해서 유대인들은 아직도 바그너라면 치를 떠는데,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아직까지 바그너 오페라 전막이 공연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이 연주된 일이 없다는 식으로 곧잘 와전되곤 하지만, 다니엘 바렌보임과 주빈 메타 등 유대인 지휘자들이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오페라 가운데 한 대목을 연주한 일이 있다. (그 뒷일은 상상에 맡긴다…;;) 사정이 이러니 바그너가 억울해할 괴담도 많은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낼 때 바그너 음악을 행진곡으로 연주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이런 주장은 어디에도 증거가 없다.) * 바그너 색깔론 떡밥 참고: [[http://wagnerianwk.blogspot.com/2011/01/blog-post_04.html|#]] == 저명한 바그네리안들 == * [[구스타프 말러]][* 참고로 말러는 유대인이다. 다만 말러는 [[요하네스 브람스]] 등의 보수파의 음악관에도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 [[글렌 굴드]]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루트비히 2세(바이에른)]] * [[마츠모토 레이지]] * [[미시마 유키오]] * [[미야자키 하야오]] *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즈]] :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이 공주님 덕택에 21세기에도 세계 각지에서 결혼식 신부 입장 때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이 BGM으로 쓰이게 되었다. * [[살바도르 달리]] *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 [[스테판 말라르메]] * [[스기야마 코이치]] * [[스티븐 호킹]][* [[https://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1492|“바그너의 작품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음악의 아름다움과 힘을 충분히 감상하고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바그너의 작품은〈니벨룽겐의 반지〉다. 나는 여러 메이커의 부속으로 조립된 스테레오 세트를 가지고 있다.”]]] * [[슬라보예 지젝]][* [[https://www.huckmag.com/perspectives/opinion-perspectives/slavoj-zizek/|인터뷰에서 메가 바그네리안이라고 밝혔다. “I’m a mega Wagnerian“]]] * [[아르투르 오네게르]] * [[아르놀트 쇤베르크]] * '''[[아돌프 히틀러]]''' * [[알프레드 코르토]] * [[앙겔라 메르켈]][* 매 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참석한다.] * [[에른스트 쇼송]] * [[안톤 브루크너]] * [[오귀스트 르느와르]] * [[조지 버나드 쇼]] * [[존 윌리엄스]] *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 [[키르슈텐 플라그슈타트]] * '''[[테오도르 헤르츨]]'''[* [[https://www.haaretz.com/life/books/1.5391392|출처]]] * [[페터 코르넬리우스]] * [[프란츠 리스트]] *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9세 - 발퀴레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는데, 유튜브 댓글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호연이다. * [[J. R. R. 톨킨]][* <니벨룽의 반지>의 2부 발퀴레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바그너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 [[한스 피츠너]] * [[후고 볼프]] 이 중 말러와 브루크너는 훗날 바그네리안 못지 않은 팬덤을 확보했고 이에 [[말레리안]], [[브루크네리안]]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 바그네리안이었다가 안티가 된 사람들 == * [[표트르 차이콥스키]] * [[클로드 드뷔시]][* 안티로 전향하면서, 바그너의 음악을 "새벽으로 오해받은 황혼"이라고 디스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그의 음악을 야만적이라고 평하거나 갖가지 이유를 동원해서 극딜을 박는다. 파르지팔이 기점인데, 그 전까지는 처녀작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를 극찬하는 등 바그너를 매우 높게 평가했었고 사적으로도 절친한 관계였으나 파르지팔을 관람한 뒤 바그너가 기독교적 가치관에 타락했다고 판단하면서 완전히 돌아서게 된다. ] * [[한스 폰 뷜로]] [* 바그너의 제자였으나 아내를 [[NTR]]당한 이후 바그너 안티가 되어 바그너의 대척점에 있던 요하네스 브람스와 친하게 지내면서 브람스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홍보했다. 참고로 그 아내는 [[프란츠 리스트]]의 둘째 딸 코지마.] * [[에두아르트 한슬리크]] [[분류: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