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이탈리아의 역사]][[분류:공국(공작)]][[분류:중세 이탈리아 왕국 구성국]][[분류:18세기 멸망]] [include(틀:이탈리아의 역사)] ||||||<tablealign=right><tablewidth=400><:> {{{+1 '''밀라노 공국''' [br] '''Ducaa de Milan''' [br] '''Ducato di Milano'''}}} || ||||||<:> [[파일:Flag_of_the_Duchy_of_Milan_(1450).svg.png|width=150]] || ||||||<width=50%><:> 국기 || ||||||<:> [[파일:Italy_1494.svg.png|width=250]] || ||||||<:> 1395년 ~ 1447년, 1450년 ~ 1796년 || ||<:> 위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 ||<:> [[수도(행정구역)|수도]] ||||[[밀라노]]|| ||<:> 정치체제 ||||군주제 || ||<:> 국가원수 ||||공작 || ||<:> 주요 공작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1395~1402)[br]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1412~1447)[br]프란체스코 스포르차(1450~1466) || ||<:> [[언어]] ||||롬바르디아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 ||<:> [[종교]] ||||[[가톨릭]]|| ||<:> 종족 ||||롬바르디아인 || ||<:> 성립 이전 ||||밀라노 코뮌 || ||<:> 멸망 이후 ||||스페인 왕국 || [목차] ||||||<:><#dcdcdc> 언어별 명칭 || || 롬바르디아어 || Ducaa de Milan || || [[이탈리아어]] || Ducato di Milano || || [[라틴어]] || Ducatus Mediolani || || [[독일어]] || Herzogtum Mailand || || [[프랑스어]] || Duché de Milan || || [[스페인어]] || Ducado de Milán || || [[영어]] || Duchy of Milan || [clearfix] == 개요 == [[르네상스]] 시대에 [[밀라노]]를 중심으로 [[롬바르디아]]에 존재했던 [[신성 로마 제국]]의 봉토 국가다. 1차 공국기인 비스콘티 가문 시절(1395년~1447년)에 르네상스 문화를 후원하며 번영하였고, 가문이 단절된 이후에는 잠깐의 공화정을 거쳐 비스콘티 가의 용병 대장이었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비스콘티 상속녀와 결혼한 후 공국을 지배하였다. 다만 2차 공국기인 스포르차 가문의 시대(1450년~1535년)에는 프랑스 [[발루아 왕조]]와 [[합스부르크 왕조]] 간의 [[이탈리아 전쟁]]에 휘말려 4차례나 약탈을 겪어야 했다. 결국 1535년에 스페인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지배 기간에도 공작위는 있었으나 공국은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역사 == 비스콘티 가문은 1277년부터 밀라노 [[코뮌]]을 지배하였다. 1대 지배자였던 오토네 비스콘티의 치하에서부터 118년이 지난 후, 제 10대 지배자였던 갈레아초 비스콘티는 당시 [[보헤미아]] 국왕이자 [[신성 로마 황제]]이던 [[벤체슬라스]][* 1376년 ~ 1400년까지 독일의 왕이었다.]에게 무려 10만 플로린을 --뇌물로-- 바치며 작위를 얻어냈다.[* 밀라노 공작위 + [[파비아]] 백작위.] 1395년 5월 1일의 일이었고, 이것이 밀라노 공국의 시작이었다.(동시에 갈레아초가 다스리던 [[파비아]]도 백국으로 승격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uremberg_chronicles_f_72r_1.png|width=500]] 밀라노 공국은 15세기 들어 이탈리아 북부의 통일을 목표로 하여 다른 도시들을 위협하였다. 1440년 베네치아-피렌체-교황령의 연합군과 밀라노 군은 안기아리에서 격돌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묘사하여 유명해진 이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하여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북부에서의 패권을 지킬 수 있었다. 이후 비스콘티가의 남계후손이 단절되자 밀라노의 [[용병]] 대장으로 유명한 스포르차 가문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비안카 마리아 비스콘티와 결혼하여 [[암브로시아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밀라노 공작위를 이었다. 그야말로 인생승리. 그러나 밀라노 공국은 이내 [[이탈리아 전쟁|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갈등속에 정면으로 휘말리게 된다. [[파일:Peter_Paul_Ruben's_copy_of_the_lost_Battle_of_Anghiari.jpg]] 이후 프랑스의 지배(1499년~1512년, 1515년~1522년, 1524년~1525년)에 놓였다가, 결국 스페인에게 넘어갔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796년 이후 프랑스와 사르데냐 왕국의 손아귀에 놓이게 되었다. 밀라노 공국의 수도였던 밀라노의 인구는 1600년에 120,000명이었고 1800년에는 140,000명으로 인구가 많은 중요한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