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민홍식(閔弘植) || || [[본관]] ||[[여흥 민씨]] || || 생몰 ||[[1881년]] [[10월 25일]] ~ [[1951년]] [[4월 17일]] || || [[출생지]]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진보리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민홍식은 1881년 10월 25일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진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학자로, 1919년 4월 2일 세곡면 누천리 장날을 이용하여 최헌영, 이대성, 이원영, [[신선균]]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시위대열이 헌병분견소 앞을 지날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해 강제로 해산시키려 들자, 그는 분노해 군중과 함께 분견소의 유리창을 부수고 분견소장의 얼굴을 구타했다. 그러나 경찰이 무차별 발포를 가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군중을 해산시킬 수 밖에 없었고, 이후 경찰에 체포되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평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8.15 광복]] 후 북한이 급격한 공산화로 치닫자 서울로 남하했고 1951년 4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민홍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여흥 민씨]][[분류:평산군 출신 인물]][[분류:1881년 출생]][[분류:1951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