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제국의 부원군)] ----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694462><colbgcolor=#694462><colcolor=gold> '''대한제국 순종의 장인 | 순명효황후의 부친[br]{{{+1 여은부원군 민태호}}}[br]驪恩府院君 閔台鎬''' || ||<-3>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민태호(1834~1884).jpg|width=100%]]}}} || ||<-2> '''[[군호|{{{#gold 군호}}}]]''' ||<colbgcolor=#fff,#1f2023>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 ||<-2> '''[[시호|{{{#gold 시호}}}]]''' ||충문(忠文) || ||<-2> '''[[|{{{#gold 품계}}}]]'''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 ||<-2> '''[[본관|{{{#gold 본관}}}]]''' ||[[여흥 민씨|여흥]](驪興) || ||<-2> '''[[이름|{{{#gold 이름}}}]]''' ||태호(台鎬) || ||<-2> '''[[자(이름)|{{{#gold 자}}}]]''' ||경평(景平) || ||<-2> '''[[아호|{{{#gold 호}}}]]''' ||표정(杓庭) || ||<-2> '''양부''' ||민치삼 || ||<-2> '''양모''' ||정경부인[*A 추증] [[기계 유씨]](杞溪 兪氏) || ||<-2> '''생부''' ||민치오 || ||<-2> '''생모''' ||정경부인[*A 추증] [[김해 김씨]](金海 金氏) || ||<-2> '''부인''' ||파성부부인[*B 추증. 생전에는 정경부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br]진양부부인[*B] [[송(성씨)|진천 송씨]](鎭川 宋氏)[br]의창부부인 [[의령 남씨]](宜寧 南氏) || ||<-2> '''자녀''' ||2남 1녀[* 친자 [[민영익]]은 [[민승호]]의 양자로 갔고, 후사가 없어진 민태호는 21촌 조카뻘인 [[민영린]]을 [[입양]]했다.([[인현왕후]]의 5대조 민사용의 아들 대에서 갈라졌다. 민사용의 장남 민여건의 9대손이 민태호이고, 6남 민여검의 10대손이 민영린이다.)] || ||<|2> '''생몰[br]기간''' ||<colbgcolor=#694462> '''[[음력|{{{#gold 음력}}}]]''' ||[[1834년]] ~ [[1884년]] [[10월 18일]] || || '''[[태양력|{{{#gold 양력}}}]]''' ||[[1834년]] ~ [[1884년]] [[12월 5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tablewidth=400><tablebordercolor=#dddddd,#383b40><tablebgcolor=#dddddd,#383b4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510_318_7.jpg|width=100%]]}}} || || '''민태호 초상화'''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척신(戚臣). 본관은 여흥. [[순종(대한제국)|순종]]의 비인 [[순명효황후]]의 아버지이자 순종의 장인이다. 민치오의 아들로 태어나 민치삼의 아들로 입양갔다. 그의 가계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후손으로 정확하게는 민유중의 차남 민진원의 자손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무렵에는 한미한 가문으로 전락하여 민태호 역시 그저그런 한량으로 살았다. 그러나 12촌 남매인 [[명성황후]]가 왕비로 간택되면서 그의 집안 역시 후광을 받아 먼저 1870년 문과 별시에 응시하여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해 총융사, 어영대장, 무위도통사, 대제학을 지냈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승호]]가 폭발사고로 사망한 후 일족인 [[민겸호]]와 함께 명성황후의 측근으로 권세를 누렸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구식군인들의 습격을 받았으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 1883년 종1품 의정부좌찬성을 지냈고 전환국 관리사무를 거쳐 다시 의정부좌찬성에 임명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고종과 명성황후를 알현하기 위해 [[경우궁]]으로 입궁하던 중 참살당했다. 사후 '충문공(忠文公)' 시호를 받고 1907년에 사위 순종이 즉위한 후 이윤용의 상소로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으로 추증받았다. == 대중매체에서 == * [[현석]] - 2001년 ~ 2002년 [[KBS2]]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 ||<table width=400>[[파일:명성황후 민태호.jpg|width=100%]] || || 《명성황후》의 민태호 || [[민승호]](김효원 분) 사후부터 등장했다. 소심하지만 권력을 탐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갑신정변]] 때 목숨을 잃는다. == 민영환의 양아버지? == [[을사조약]] 직후 자결한 [[민영환]]의 양아버지이자 선혜청 당상으로 임오군란 때 피살당한 민겸호의 형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민영환의 양아버지이자 민겸호의 형 역시 이름이 민태호(閔'''泰'''鎬)로 한글 표기가 같고, 또 예전에는 친척 간의 양자 입적이 흔해서 가계(家系) 따지다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단 구한말 민씨 척족의 핵심 일원들은 다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閔維重)의 자손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민유중을 기준으로 삼고 간단하게 표를 만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민유중의 장남인 민진후(閔鎭厚) 쪽 후손 : ... 민치록 ― ''민승호'' (입적) ― ''민영익'' (입적) ... 민치록 ― 명성황후 ― [[순종(대한제국)|순종]] ・민유중의 차남인 민진원(閔鎭遠) 쪽 후손 : ... 민치오 ― ~~''민태호(閔台鎬)''~~ ... 민치삼 ― ''민태호(閔台鎬)'' (입적) ― ~~''민영익''~~ , 순명효황후[* 순종의 아내. 황태자비. ] ・민유중의 삼남인 민진영(閔鎭永)[* 민진후, 민진원의 배다른 동생이다.] 쪽 후손 : ... 민치구 ― 여흥부대부인[* [[흥선 대원군]]의 아내] ― [[고종(대한제국)|고종]] ... 민치구 ― 민태호(閔泰鎬) ― ''민영환'' (입적) ... 민치구 ― ~~''민승호''~~ ... 민치구 ― 민겸호 ― ~~''민영환''~~|| 촌수를 따져보면, 민유중은 '호(鎬)'자 항렬에게 6대조 할아버지이므로 민태호(閔泰鎬)와 민태호(閔台鎬)는 서로 12촌 지간이다. [[명성황후]]도 마찬가지. 위의 표에서 보듯 민태호 한 명만 헷갈려도 족보가 완전히 꼬여버린다. 이런 문제들을 적절히 섞으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1. '민태호', 민승호, 민겸호, 여흥부대부인은 친형제자매이다. 2. 민영익, 순명효황후는 '민태호'의 자식이다. 민영익은 민승호의 자식이기도 하다. -- '민태호' = 민승호 -- 3. 민영환은 '민태호'의 자식이다. 민겸호의 자식이기도 하다. -- '민태호' = 민겸호 -- 4. 민승호는 [[명성황후]]의 친정오라버니이고, 그 아들인 민영익은 명성황후의 친정조카이다. 5. 따라서 '민태호', 민승호, 민겸호, 여흥부대부인은 명성황후의 친형제자매이고, 또한 민영익, 순명효황후, 민영환은 명성황후의 친조카이다. 6. 그런데, 여흥부대부인은 고종을 낳고, 명성황후는 그 며느리가 되고 순종을 낳고, 순명효황후는 그 며느리가 되고 순종의 아내가 된다. 7. 그러므로 '''[[민영익]], [[순명효황후]], [[민영환]], [[고종(대한제국)|고종]], [[순종(대한제국)|순종]]은 [[혼란하다 혼란해|모두 4촌지간이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러므로 이 문서의 민태호는 '''민영환의 양아버지가 절대 아니다.''' [각주] [[분류:대한제국의 부원군]][[분류:조선의 국구]][[분류:여흥 민씨]][[분류:1834년 출생]][[분류:1884년 사망]][[분류:수구파]][[분류:살해된 인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민영환, version=154, paragraph=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