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bgcolor=white> [[파일:민영주.jpg|width=200px]] || || 성명 ||민영주(閔泳珠) || || [[본관]] ||[[여흥 민씨]][* 삼방파 28세 영(泳) 항렬.] || || 생몰 ||[[1922년]] ~ || || [[출생지]] ||[[중국]] [[상하이]] || ||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 생애 == 민영주는 1922년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 [[민필호]]와 [[신창희(1906)|신창희]] 부부 사이의 2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창설되었을 때 광복군에 입대했으며, 1942년 1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부원으로 근무했으며, 충칭 방송국의 라디오 방송을 통한 심리작전 요원으로 활동했다.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으며,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 서기로 파견되어 [[이범석]]의 비서를 맡았고, 1945년 4월에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어 복무했다. 또한 그녀는 1944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학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참가한 [[김준엽]]과 결혼해 외아들 김홍규를 낳았다. 광복 후, 민영주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거주하면서 [[고려대학교]] 총장으로서 군부 독재에 맞선 남편을 보필했고, 결혼식 때 주례를 서주고 남편과 함께 군부 독재에 맞선 [[장준하]]와 깊은 친분을 맺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은 그녀는 남편이 2011년 6월 7일에 사망한 후 모든 대외활동을 그만두고 칩거했다. 2013년엔 자택에서 당시 신임 총리였던 [[정홍원]]의 방문을 맞이했고[[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122840|#]], 2019년 3월 파주 자유로요양병원에서 이철민 파주시 경찰서장의 방문을 맞이했으며[[http://www.kgmaeil.net/news/articleView.html?idxno=207717|#]], 2019년 9월엔 [[최종환(정치인)|최종환]] 파주시장의 방문을 맞이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17&aid=0000448086|#]] 그녀는 현재 이준호(李濬鎬)와 함께 건국훈장을 수여받은 이들 중 현재까지 생존 중인 유이한 [[독립유공자]]이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상하이시 출신 인물]][[분류:여흥 민씨]][[분류:1923년 출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