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91919><tablealign=center><tablebgcolor=#191919> '''{{{+1 [[일제강점기|{{{#fff 일제강점기}}}]] [[조선귀족|{{{#fff 조선귀족}}}]]}}}''' || || {{{#!wiki style="margin: -0px -10px" {{{#fede58 {{{#!wiki style="margin: -6px -1px" {{{#555555,#aaaaaa ||<tablewidth=100%><bgcolor=#fff,#222><width=20%> '''[[백작|{{{#191919,#e5e5e5 백작}}}]]'''[br]--민영린-- || || {{{-1 [[1919년]] [[아편]] 흡입죄로 구속되어 작위 박탈}}} ||}}}}}}}}}}}} || ---- ||<-2><tablealign=center><tablewidth=450><tablebordercolor=#191919><colbgcolor=#191919><colcolor=#fff> '''--[[조선귀족|{{{#fff '''조선귀족 백작'''}}}]]--[br]{{{+1 민영린}}}[br]閔泳璘'''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510_318_5.jpg|width=100%]]}}} || ||<|2><width=100> '''성명''' ||<colbgcolor=#FFF,#191919><(> 민영린 (閔泳璘) || ||<(> 민영기 (閔泳琦), 민영언 (閔泳彦) || || '''자''' ||<(> 기옥 (奇玉) || ||<|2> '''출생''' ||<(> [[1872년]] ([[고종(대한제국)|고종]] 9) [[11월 15일]] || ||<(> [[한성부]] (현 [[서울특별시]]) || || '''사망''' ||<(> [[1932년]] [[6월 1일]] (향년 60세) || || '''직업''' ||<(> 관료, 정치가 || || '''본관''' ||<(> [[여흥 민씨]] (驪興) || || '''종교''' ||<(> [[유교]] (성리학) || || '''작위''' ||<(> --[[조선귀족]] [[백작]]-- || || '''주요 경력''' ||<(> 홍문관 정자, [[성균관]] 대사성[br][[궁내부]] 특진관, 동지돈녕부사[br]규장각 제학, --조선귀족 백작-- || [목차] [clearfix] == 개요 == 구한 말의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궁내부]] 특진관 등을 역임한 수구파 관료로 [[아편]] 흡입으로 인해 [[조선귀족]] [[백작]] 작위를 박탈당하기도 한 [[마약사범]]이기도 하다. [[1872년]] [[한성부]] 출신으로 초명은 민영기(閔泳琦)이고, 본관은 [[여흥 민씨|여흥]](驪興), 자는 기옥(奇玉)이다. == 상세 == [[1872년]] (고종 9) [[11월 15일]],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본래 민술호의 아들로, 여흥 민씨 입암공파였으나 21촌 숙부뻘인[* 실제 혈통 상으로는 [[인현왕후]]의 5대조 민사용의 아들 대에서 갈라졌다. 민사용의 장남 민여건의 9대손이 민태호이고, 6남 민여검의 10대손이 민영린이다.] 삼방파의 [[민태호(조선)|민태호]]에게 입적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순명효황후]]의 남동생이다. [[1892년]] 문과에 급제했고 홍문관 응교, 춘추관 편수관, 태자비궁 대부, 비서원승, 장례원 장례, [[궁내부]] 협판, [[홍문관]] 부학사, 궁내부 특진관, 회계원경, 시강원 담사 등을 역임했다. [[1904년]] 예식원 부장으로 승진했고, 같은 해 특파일본보빙대사 [[이지용]]의 수행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내장원 감독, 예식원 부장, [[군부|군부대신]] 관방장, 동지돈녕원사 겸임 특명전권공사, 비서원경, 궁내부 특진관, [[의정부]] 찬정, 태의원경, 시강원 첨사, 장례원경, 지돈녕사사, [[규장각]] 제학 등을 역임했다. 경술국치 이후 강제 병합에 협조한 공로로 [[1910년]] [[10월]], [[일제]]로부터 [[조선귀족]] [[백작]] 작위를 습작했고, [[1911년]] [[1월]] 12만원의 은사공채를 받았다. [[1919년]] [[5월]], [[아편]]을 흡입해 징역 3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이에 따라 [[7월]]에 작위를 박탈당했다. [[1932년]] [[6월 1일]], 6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조선귀족)] [각주]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정치]][[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수작, 습작]][[분류:1872년 출생]][[분류:1932년 사망]][[분류:여흥 민씨]][[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한제국의 인물]][[분류:수구파]][[분류:조선귀족 백작]][[분류:제명된 정치인]][[분류:마약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