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민영갑(閔泳甲) || || [[본관]] ||[[여흥 민씨]][* 28세손 영(泳) 항렬] || || 생몰 ||[[1888년]] [[1월 28일]] ~ [[1965년]] [[6월 20일]] || || [[출생지]]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부평리 || || 사망지 ||[[충청남도]] [[홍성군]]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민영갑은 1888년 1월 28일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부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4039|이재만]](李載萬)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그들은 4월 1일 밤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에 소재한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조선 연극이 있어 다수의 관중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 그들을 선동하기로 계획했다. 또 그는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9913|김재홍]](金在洪)·[[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9061|조한원]](趙漢元)·[[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4502|최중삼]](崔仲三)·[[조재학#s-3]] 등에게 이 계획을 말하고 참가를 권유했다. 4월 1일 저녁 8시경, 민영갑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이원교의 집 연극 공연장에서 공연 중에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연극을 보고 있던 관중 20~30명도 여기에 호응해 독립만세를 따라 불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5년 6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민영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여흥 민씨]][[분류:홍성군 출신 인물]][[분류:1888년 출생]][[분류:1965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