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292929><bgcolor=#dcdcdc,#222> {{{#292929 '''{{{+1 민승호}}}[br]閔升鎬 | Min Seung-Ho'''}}} || ||<colbgcolor=#292929><colcolor=#FFF> '''이름''' ||<colbgcolor=#FFF><(> 민승호 (閔升鎬) || || '''본관''' ||<(> [[여흥 민씨]] (驪興) || || '''자''' ||<(> 복경 (復卿) || || '''시호''' ||<(> 충정 (忠正) || || '''출생''' ||<(> [[1830년]] || ||<|2> '''사망''' ||<(> [[1874년]] [[음력]] [[11월 28일]] (향년 44세)[* [[민승호 암살 사건]] 문서 참조.] || ||<(> [[한성부]] || || '''직업''' ||<(> 정치가, 관료 || || '''종교''' ||<(> [[유교]] (성리학) || || '''국적''' ||<(> {{{-1 [[파일:조선 어기.svg|width=25]] [[조선]]}}} || || '''주요 경력''' ||<(> [[홍문관]] 교리[br][[규장각]] 직각[br]가례도감 부제조[br]이조참의[br]호조참판 || || '''가족관계''' ||<(> 친부 : 민치구[br]친모 : 전주 이씨[br]누나 : [[여흥부대부인]][br][[동생]] : [[민겸호]][br]양부 : 민치록[br]양모 : 한산 이씨[br]여동생 : [[명성황후]][br]부인 : 광산 김씨, 연안 김씨,덕수 이씨[br]양자 : [[민영익]]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후기의 척신(戚臣)으로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외삼촌인 동시에 [[명성황후]]의 양오빠가 된다. 본관은 여흥 민씨이다. == 생애 == 1830년 판돈형부사를 지낸 민치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흥선대원군]]의 아내인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친동생이다. 본래 민치구에게서 태어났지만 11촌 아저씨뻘이자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치록의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그에 따라 명성황후의 양오빠가 되었다. 고종 입장에서는 외삼촌이 처남이 된 것. === 관직 생활 === 고종 1년(1864년)에 중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왕이 된 [[고종(대한제국)|고종]]의 휘하 관료로 입문하게 되었고 양누이인 [[명성황후]]가 고종의 왕비가 되면서 이조 참의를 지냈고 이후 호조 참판, 형조 판서, 병조 판서를 지냈다. 흥선 대원군과 명성 황후의 갈등 면에서는 [[민겸호]], [[민태호(조선)|민태호]] 등과 함께 명성 황후의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1874년 흥선 대원군이 실각되었을 때는 명성 황후에게 공로를 인정받아 민씨 족당의 수령이 되었다. === [[민승호 암살 사건]] === >'''[[운현궁 #s-3|"운현궁…"]]''' > -민승호의 유언.[* 운현궁은 당시 '''[[흥선대원군]]'''이 살던 장소이다.] 1874년 자택에 있던 중 한 수령이 보낸 선물을 받게 되면서 선물을 개봉하려는 중 [[폭사|폭탄이 터져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 동시에 일가족도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때 그의 양어머니 이씨와 아들도 함께 사망했는데, 만약 이 폭살의 배후 조종자가 [[흥선대원군]]이 맞다면 흥선대원군은 자기 처남과 사돈을 죽인 셈이 된다. === 사후 === 폭사 이후 [[고종(대한제국)|고종]]으로부터 충정(忠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조카 [[민영환]]의 시호도 민승호와 같은 충정공이다. 일반적으로 민충정공이라고 지칭하면 주로 [[민영환]]을 뜻하는 것이다.] [[분류:1830년 출생]][[분류:1874년 사망]][[분류:암살된 인물/한국사]][[분류:폭발물에 죽은 인물]][[분류:테러 피해자]][[분류:병조판서]][[분류:조선의 외척]][[분류:여흥 민씨]][[분류:수구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