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로마 제국의 황제, rd1=미하일 1세 랑가베스)] [include(틀:역대 루스 차르국 차르)] [[파일:external/media-cache-ak0.pinimg.com/7d780647f8941912cf5afbc91485b3a2.jpg]] Михаи́л Фёдорович Рома́нов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 생애: [[1596년]] [[7월 22일]] ~ [[1645년]] [[7월 23일]](만 49세) 재위: [[1613년]] [[2월 21일]] ~ [[1645년]] [[7월 23일]] [목차] == 개요 ==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개창자다. [[표트르 대제]]의 할아버지. == 생애 == [[이반 4세]] 사후 동란 시대를 거쳐 젬스키 소보르(전국 회의)에서 새 [[황제]]를 선출하게 되는데, 그는 공포의 [[이반 4세]]의 첫 번째 왕비였던 아나스타샤의 오빠인 '니기타 로마노프'의 손자였다. 이런 일이 생긴 이유는, [[혼란 시대]]라 알려진 대동란시대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몰아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보야르]], '드미트리 포자르스키'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대[[보야르]]들과 [[정교회]] 고위 사제들이 [[신권강화|든든한 빽이나 자신만의 세력이 없는 허수아비를 찾다]]가 발탁 되어 [[차르]]가 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16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으며 선제 시절 때 사제 되기를 강요당했던 어머니를 따라 수도원에 살았던지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주변 친척들이 대부분 정치를 담당했다. 시작 배경이 이러다 보니 손자, [[표트르 1세]]의 시절까지 로마노프 왕조의 차르들은 대[[보야르]], 정교회의 집중 견제를 받아 황권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1619년부터는 정교회 수도사였다가 [[폴란드]]에 잡혀갔던 그의 부친 '표도르 니키티치 로마노프'가 귀국하여 러시아 정교회의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되었고 동시에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1633년 아버지가 죽은 이후 다시 단독 통치자가 되었으나 심약하여 외척들이 정권을 장악했다. 재위기간 내내 [[폴란드]]의 [[지그문트 3세]]의 공격에 시달렸다. [[분류:러시아 차르]] [[분류:로마노프 가문]] [[분류:1596년 출생]] [[분류:164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