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right><tablewidth=4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gwSllr.png|width=100%]]}}}|| ||<bgcolor=#efefef> {{{#000000 평북 의주 미송리에서 발견된 토기.}}} || [목차] [clearfix] == 개요 == {{{+1 美松里式土器}}} [[청동기시대]] [[한반도]] 북부 지방에서 사용되던 [[민무늬 토기]]의 일종. [[1959년]] [[평안북도]] [[의주군]] 미송리[*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때 수진면 송천리와 미산리를 병합하여 신설되었다.]에서 발견된 새로운 형태의 토기라서 '미송리식 토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한]] 학계에서는 '미송리형 단지'라고 부른다. 주류 사학계에서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영역을 가늠하는 고고학적 유물의 하나로 꼽힌다. 기원전 6~5세기경 [[청천강]] 유역에 살던 주민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며, 비단 [[청천강]] 주변 뿐 만 아니라 요령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현재까지 [[평안북도]] 용천군 신암리, [[압록강]] 상류의 [[자강도]] 중강군 장성리 및 토성리, [[청천강]] 유역의 세죽리 및 구룡리, [[대동강]]·재령강 유역에서도 발견되고 있고, 심지어 [[요동]] 지방과 [[요서]]에서도 출토된다. 그리고 평북의주 동굴에서 최초로 발굴되었다. 특별한게 있다면 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달리고 목이넓은게 특징이다. == 내용 ==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미송리식 토기는 밑바닥이 평평하고 몸은 뚱뚱하고 목 부분이 V자로 들어가 있으며 손잡이가 2개 달린 모양이다.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영역을 가늠해주는 유물 중 하나라고 교과서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국가가 영역 국가도 아닐 뿐더러) 단순히 미송리식 토기의 '영역'은 [[동아시아]] 전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고, 이것 자체가 표지 유물이 되는 것은 고조선으로 부르는 요녕성 일대의 많은 작은 문화권 중 일부인 이도하자 유적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뿐이라서 이런 식으로 언급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한 유물이다. 즉 비파형동검이나 미송리식 토기를 고조선이 발명한 고유의 유물이라고 하기보다는 이런 유물들을 생산한 수많은 소국 중에 하나가 고조선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분류:고고학]][[분류:청동기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