勿部珣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백제]]와 [[당나라]]의 인물. [[일본]]계 백제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물부순인게 확인되면서 [[북송]] 대의 시문집 문원영화(文苑英華)에 등장하는게 확인되었다.]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이 판독되기 전까지 '순장군(珣將軍)'으로 알려져 있었다. == 대당물부장군공덕기 == 707년 조성된 대당물부장군공덕기(大唐物部將軍功德記)에 따르면 그는 본래 동해(東海)의 한 가문 출신으로 선조 대대로 벼슬을 지내왔다고 한다. 그는 나라가 망하기 전 고국을 떠나 당으로 들어갔다.[* 정황상 660년 백제 멸망이거나 663년, 백제부흥군이 몰락한 [[백촌강 전투]]로 인해 입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하단 참조.] 당에 들어간 그는 '''[[흑치상지]]'''의 둘째 딸과 결혼해 4남 1녀를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벼슬은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에 이르렀다. 흑치준의 여동생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 흑치씨는 백제부흥군 관련 인사로 추정되는 물부순(勿部珣)과 결혼했다. == 사실은 일본인인가? == [[2006년]], 마멸된 글자가 '勿'로 밝혀지면서 그가 '물부씨(勿部氏)'인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에 고대 [[일본]]의 성씨인 [[모노노베]]씨(物部氏)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대 일본에서 모노노베씨는 니기하야히노미코토(邇芸速日命)라는 신의 후예로 여겨진 유력한 호족이었다. 김영관 박사는 이러한 점을 들어 물부순은 백제 유민이 아니라 백제 부흥 운동에 참여한 [[일본인]]으로, 포로가 되어 당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모노노베씨는 소가씨와의 종교분쟁 및 권력다툼에서 밀려 일본에서 관직진출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많아 중국으로 귀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는 [[흑치준]]의 여동생[* 흑치준이 676년 생이니, 최소 677년 이후 ~ 흑치상치가 사망한 689년 이전에 태어난 걸로 짐작된다.]과 결혼한 점을 미루어 봤을 때, 귀화한 일본계 백제인일 가능성도 있을 듯. 물부순 외에도 [[성왕(백제)]] 시기의 모노노베씨로 [[관산성 전투]]에도 등장한 시덕(施德) 모노노베노 마가무(物部 麻奇牟), 나솔(奈率) 모노노베노 요가타(物部 用奇多), 나솔(奈率) 모노노베노 가히(物部 奇非), 상부나솔(上部奈率) 모노노베노 카쿠(物部 烏) 등이 백제의 관료로서 등장하는데, 즉 모노노베씨는 꽤 오래 전부터 아예 백제에 눌러앉아 대를 이어온 귀화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물부순은 이들과 혈연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분류: 백제의 인물]][[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 백제의 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