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문응국(文應國) || || 생몰 ||[[1921년]] [[6월 10일]] ~ [[1996년]] [[4월 21일]] || || [[출생지]]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내동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 생애 == 문응국은 1921년 6월 10일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내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했고, 1939년 10월에서 1940년 9월까지 [[시안]]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했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될 때 제5지대에 입대했다. 이후 1940년 9월 17일부터 광복군 제2지대 및 총사령부에서 근무했으며, 1943년 6월 [[영국]]과의 군사협정에 의하여 창설된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功作隊)에 편입되어 부대장을 맡았다. [[버마 전선]]으로 투입된 문응국은 [[1943년]] [[8월]]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는 [[인도 제국]] [[캘커타]]에 도착하여 4개월간 일본군 통신 감청 및 포로 심문 등의 훈련을 이수하고 1944년 3월 [[임팔 작전]]에 투입되었다. 1944년 5월, 감청 임무를 수행하던 그는 [[일본군]]의 포위망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현지에서 포위된 것으로 오인하고 죽을 각오로 싸우던 영국 육군 17사단에게 이 사실을 통보해 17사단이 전력을 보전한 채 퇴각할 수 있게 했다. 영국군은 그의 활약상에 호평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인원 증파를 요구했다. 문응국은 이후에도 버마 전선에서 활약해 [[1945년]] [[5월]] 연합군이 [[양곤]]을 탈환할 때 종군했고, 1945년 9월 10일 대원들과 함께 [[충칭]]의 광복군총사령부로 복귀했다. 이후 광복군 남경지대에서 정치지도원으로 활동했으며, 귀국 후에는 육사 5기에 임관, 대령까지 진급하였고 제2대 문화재관리국장(현 문화재청장)을 역임하였다. 전역 후 스카우트운동에 전념하다 1996년 4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문응국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1996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안악군 출신 인물]][[분류:1921년 출생]][[분류:1996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