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214A154558BE6A550E.png|width=500]] 문영철 1915년 ~ 1950(?), 1953년(?) [목차] == 개요 == [[일제강점기]] 시기의 인물로 [[김두한]]의 부하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두한 부하 명단에 문영철이 없었다.] 다만, '전우치전설' 이라는 블로거에 따르면 문영철의 본명은 문영철이 아니라 문운경이라는 이름이며[* 다만 문영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고는 한다. 두 이름중 하나는 링네임이거나 혹은 아명등 개명이전 이름으로 보인다.][* 매일신보나 동아일보 등을 검색해 보면 1930년대 후반에 활약했던 권투선수 중 문운경이라는 이름이 나오기는 한다.], 일제시대 당시에는 [[상하이|상해]] 등지에서 권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또한 장호근의 무풍지대에선 문용철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김두한의 직속 부하는 아니었고, 해방 후에 김두한과 같이 우익활동을 하며, 부인을 따라 [[기독교]]에도 귀의했다고 한다. 우익단체 활동과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6.25 때 피난가지 못하고 [[조선인민군|인민군]]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는 카더라가 있다고 하나, 보통 다른 [[우미관]] 패거리나 그 당시 이름난 주먹패들 이야기에는 잡지나 신문기사로 나름 고증을 하려고 하는 그 블로거도 문영철에 대한 건 그저 '저런 카더라가 있다더라' 라는 말 정도로 끝났다. 참고로 문영철의 아들인 문수영의 친구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저 이야기를 똑같이 했는데, 아마 거기서 따온 이야기로 보인다. 다만 김두한의 증언한 이야기는 다른데, 김두한은 자서전이나 노변야화에서 문영철과 [[김무옥]]을 자기 왼팔과 오른팔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김두한이 박씨 여인을 깡패로부터 구해 준 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후에 데이트를 할 때 박씨 여인이 여동생을 데리고 나오자, 김두한 측에서는 문영철을 데리고 가서 박씨 여인의 여동생을 상대하게 해 줬었다는 이야기도 했고, 일본인 [[야쿠자]] 패거리[* [[선우영빈|하야시]]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김두한의 자서전과 노변야화에서 야쿠자 두목의 이름과 신상이 서로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를 상대로 한 유명한 장충공원 혈투에서도 자기 포함 세 명이 갔다느니 여섯명이 갔다느니 하고 말은 달라도 문영철과 김무옥은 꼭 같이 끼어 있었다. 이로 봤을 때, 문영철이 진짜 김두한의 심복이었을 가능성도 있고, 혹은 저 위의 블로그에서 말한 카더라가 맞다면, 과장이나 자기 과시 심한 김두한의 특성상 '당대에 유명한 문영철도 내 아래 있었다.' 란 말로 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썼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김두한과 우미관 패들이 죄다 학도병 이끌고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다가 문영철과 김무옥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 역시 확인된 바는 전혀 없다. 아들 한 명을 두었는데, 그의 아들 문수영은 목사로 있다고 한다. == 대중매체에서 == === 드라마 [[야인시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문영철(야인시대))] [[분류:대한민국의 조직폭력배]][[분류:1915년 출생]][[분류:권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