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bgcolor=white> [[파일:문양목.jpg|width=300px]] || || 이름 || 문양목 (文讓穆) || || 이명 || 문성렬 (文聖烈) || || 생몰년도 || [[1869년]] [[6월 7일]] ~ [[1940년]] [[12월 25일]] || || 본관 || [[남평 문씨]] || || 출생지 ||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산리[* [[남평 문씨]] 집성촌이다.][[http://www.korea8.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22|#]] || == 개요 == 문양목은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고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이다. == 생애 == 문양목은 25세 되던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이 발발하자 운동에 참여한다. 잡혀있는 동학 동료들을 구하는 작전에 참여하는 등 활동하지만 이 과정에서 같이 참여했던 아내가 죽고 본인도 죽을 뻔하는 피해를 입는다. 운동이 진압되고 숨어지내다가 1903년 [[인천광역시|인천부]]에서 서당 교사로 있었다. 이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미국인이 사탕수수농장의 노동자를 모집하자 이에 응하여 [[하와이]]로 건너간다. 사탕수수농장에서 자금을 모으고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다음 동학농민운동 출신 인물들과 함께 '대동보국회'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선임된다. 해당 단체에선 대동공보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여 동포들을 대상으로 국권 회복 운동을 고취시키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1908년 3월, [[더럼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한국 침략은 정당하다는 망언을 한다. 대동보국회는 공립협회와 함께 문양목을 포함한 특사 4명을 파견하여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스티븐스가 이를 거절하여 격분한 특사들이 스티븐스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튿날에는 [[전명운]]과 [[장인환]]이 스티븐스를 사살하고 대동보국회는 변호인단을 꾸려 무죄를 호소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이후 1924년 각국 노동자 단체에 가입하였고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미주 한인들의 대표를 맡다 1940년에 별세하였다.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여담 == * 로스엔젤레스에 대동신셔관이라는 출판사를 차려 [[이승만]]이 1904년에 한성감옥에서 저술했던 [[독립정신]]을 출판하기도 했다. == 참고 자료 == * 정상규 저.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휴먼큐브. 2017년. 218~219p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남평 문씨]][[분류:태안군 출신 인물]][[분류:1869년 출생]][[분류:194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