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文殊菩薩 [[불교]]의 대승[[보살]](大乘菩薩) 가운데 하나. 줄여서 [[문수]](文殊)라고도 하며, [[대승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한다. 문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범어]] 원어는 만주슈리(Manjushri)이다. ‘만주’[* 지명 [[만주]]의 어원 중 하나를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해당 항목 참조.]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으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문수보살은 [[붓다|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반야지혜의 권화(權化)로서 표현되었고 지혜를 취급한 ≪반야경≫을 결집•편찬했다고 한다. 또한 [[석가모니|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돕기 위해 일시적으로 보살의 지위에 있지만 이미 예전에 [[성불]]하였고, 미래에 성불하여 보견여래(普見如來)가 될 보살이라고 한다. 문수보살은 다른 보살 1만 명과 함께 [[중국]] [[산서성]] 오대산(五臺山)[* 청량산(淸凉山)이라고도 하고, '오대산'을 중국식 발음으로 읽어 '우타이샨'이라고도 한다.]에 상주한다고 하는데, 중국 오대산은 7세기 [[신라]] [[자장(신라)|자장율사]]와도 관계가 깊다.[*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 너희 나라(신라)의 동북방에도 내가 머무는 곳이 있으니 찾아보라는 말과 함께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장율사가 귀국하여 찾아낸 산이 오늘날 강원도 [[오대산]]이다. 중국 오대산에 대응하는 또다른 오대산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우리나라 오대산도 문수신앙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다.] 재가신자의 자세와 태도를 설법하는 유마경에서는 주인공인 유마거사를 문병하러 가서[* 유마거사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에 석가모니가 자신의 제자들과 다른 보살들을 향해 유마거사를 문병하러 가라고 명하지만 이들은 저마다 한 번씩 유마거사에게 일침을 당한 적이 있음을 들어 가려 하지 않고, 심지어 관음보살과 미륵보살마저도 유마거사에게 문병 가기가 버겁다며 사양하는데, 문수보살이 나서서 가겠다고 했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유마거사와 함께 토론을 벌인다. 대승불교에서 굉장히 위상이 큰 보살인데도 불구하고, 위상에 비하면 현대 한국불교에서 민중적인 인기는 떨어진다. 민중들이 보기에 당장 지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인 듯하다. 보살들 중에서도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의 인기와 비교하면 형편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일본이나 티베트 불교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휠씬 인기가 많고,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는 대중적으로도 중요한 보살로 여겨 문수보살 진언을 흔히 외우곤 한다. == 기타 ==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울산]] 문수산에 있다는 문수보살에게 신라를 살릴 지혜를 구하러 왕이 행차하였다. [[태화강]]을 건너 현재의 삼호교 부근에서 어린 [[동자승]]이 왕을 마중나왔는데, 동자승은 "스승 문수보살은 출타해 만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왕은 그제서야 동자승이 문수보살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 전설은 아직도 인근 지명에 남아있는데, 동자승이 간 곳 없이 사라진 곳이 무거(無去)동, 애타게 세 번 부른 곳이 삼호(三呼→三湖)동, 자취를 못 찾아 멍하니 바라본 곳이 망성(望聖)리, 쫓아가다가 주저앉은 곳이 허고개, "헐 수 없다." 탄식하며 물을 마신 우물이 헐수정(공원)이다.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는 [[세조(조선)|세조]]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세조(조선)|세조]]가 [[단종(조선)|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어느날 꿈에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나타나 저주하며 등에 침을 뱉었다. 세조가 잠에서 깨니, 꿈에서 등에 침이 맞은 부위마다 종기가 생겼다. 종기를 낫게 하려 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상원사에 찾아가 기도하려고 했다. 문뜩 상원사 앞 계곡 물에서 혼자 몸을 씻으려 하는데 웬 동자승이 지나가므로 불러 등을 씻겨 달라고 하였다. 다 씻은 뒤 세조가 동자승에게 "너는 어디 가서 왕의 옥체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하고 이르니, 동자승도 "왕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만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대답하고 사라졌으며, 종기도 씻은 듯이 없어졌다. 그 후 세조가 명을 내려 상원사에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문수보살상]]을 만들어 봉안하였다고 하는데, 이 문수상은 국보 221호로 지정되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세조가 실제로 종기로 죽었기 때문에 현덕왕후의 저주는 세조의 병으로 인해 자연스레 생긴 민중의 전설인데 비해, 문수보살이 씻어줬다는 얘기는 실제로 낫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 전설을 무마하려고 지배층에서 퍼뜨린 프로파간다에 가깝다는 의견을 펴기도 한다. [[일본]]에는 '세 사람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三人寄れば文殊の知恵)'라는 속담이 있다. 우매한 사람이라도 여럿이 모여 논의하면 올바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 부처 모에화 게임인 [[나무아미타불: 연대 UTENA]]에서 문수보살이 이 속담을 직접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제 계산으론 세 사람 정도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지만..." 여담으로 본작에서 성우는 [[키지마 류이치]]. ] 위에 나온 것처럼 [[만주족|건주여진]]이 특히 숭배했으며, [[만주]]라는 부족명도 문수보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정설이다. == 관련 문서 == *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분류:보살]][[분류:나무위키 불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