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법의학자 = [include(틀: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 [[파일:attachment/153122_8484_5619.jpg]] [[파일:attachment/문국진/문국진.jpg]] 文國鎭 == 개요 ==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대한민국|한국]] [[법의학]]계의 태두. [[1925년]]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이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생애 == 원래 [[법대]]에 가고 싶었던 그는, 재학 중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관심을 갖게 된 해외의 낯선 학문인 '''[[법의학]]'''이란 분야에 꽂혀서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 졸업 후 [[국과수]]에 들어가 법의관으로 활동했고, 그후 1970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과수]] 재직 시절에도 [[고려대학교]] [[병리학]] 외래 교수로 출강하곤 했다.] 1976년에는 법의학의 불모지인 한국에 최초[* 사실 [[경성제국대학]]에 [[법의학]]교실이 있었으나 해방 후 [[미국]]의 제도를 본따 [[의대]] 제도를 만들다 보니 법의학교실이 모두 없어졌다.]의 법의학교실인 [[고려대학교]] 법의학교실을 설립하였다. 그 후 여러 곳에서 법의학 관련 강연을 하고, 법의학 관련 연재 활동을 활발히 했다. [[1990년]]에 [[고려의대]] 교수에서 정년 퇴임하고 현재는 여러 저작을 통해 대중들에게 법의학을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 법의학을 홀로 개척하신 선구자, 많은 법의학 교수들이 이 분의 영향을 받아 법의학에 투신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서울의대]] 이윤성 교수는, 서울의대 본과 2학년 재학 당시 [[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형이 문국진 고려대 교수의 법의학 강의를 듣고 왔던 것을 계기로 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장기려]]의 제자이다. 동시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부검을 맡은 황적준 前 고려의대 교수가 문국진 교수의 제자이다. [[예술]]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데, <미술과 범죄>라든가 <그림으로 보는 신화와 의학>, <명화로 보는 사건>, <모차르트의 귀>, <바흐의 두개골을 열다> 등 서점에서 문국진의 책을 찾아보면 일반 [[법의학]] 책보다 [[미술사]], [[클래식]] 등 예술과 접목시킨 책이 더 많이 나온다(…) 2014년에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자녀인 문태영 박사는 국내 유일의 곤충법의학자로, [[고신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오대양(사이비 종교)|오대양]] 사건도 부검을 맡았는데, 관련된 인터넷 기사에서 악의적인 협박 댓글이 달려 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후에 [[세월호]] 침몰과 맞물리면서, [[장기려]] 박사는 제자들이 해상에 관련된 유명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우연성도 가지게 되었다. == 저서 일람(법의학 분야) == * '''최신 [[법의학]]''' *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이 제목은 시체에 칼을 대는 것을 두벌주검으로 보던 시절에, 한 피해자의 시신을 해부하려다 '''피해자의 할아버지가 문국진 교수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은''' 에피소드에서 따온 것. 여담으로 이 사건은 법의학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그리고 '죽을 뻔했디'는 '''오타가 아니고 정말 책 제목이 그렇다.''' 문국진 교수가 [[평양직할시|평양]] 출신이기 때문에 [[서북 방언]]을 쓰기 때문.] * '''지상아''' * '''새튼이''' * 예술작품의 후각적 감상 *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 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 *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 - 일본 법의학자 우에노 마사히코와 공저. 서로 문답 형식으로 한일 양국의 법의학, 죽음에 대한 관념 차이 등을 서술한다. *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 == 여담 == 국내 최초로 [[사자명예훼손죄]]로 피소된 적이 있었다. 1967년 8월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1961년 있었던 황윤석 판사[*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로 부친인 황의돈은 역사학자로 [[황현]]의 7촌 조카이다. 즉, 황현의 8촌 조카이기도 하다.] 의문사 사건의 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때 재판부의 확정결론이었던 "불상의 약물 과다투여로 사망"을 부정하고, "[[감기약]]과 [[흥분제]]를 같이 먹어 그 부작용으로 황 판사가 사망했다"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황 판사의 유족들로부터 고소당했기 때문이었다. 구속 기소되어 1심 재판을 받던 중, 많은 의학계 동료들의 구명활동과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로 고소인인 유족들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다행히 면소되어 풀려났다. == 읽을거리 == * [[http://www.doctors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3122|인권과 의권을 빛낸 법의학자 - 문국진]]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3&contents_id=8633|네이버 캐스트, 우리 시대의 멘토 - 문국진]] = [[통일그룹]] 기업인 = [[문선명]]의 4남이며 1970년에 태어났고 [[하버드]]와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재단이사장 , [[통일그룹]] 회장을 지냈다 ,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후계구도에서 밀려나 [[선문학원]] 이사장으로 살다가 7남 [[문형진]]과 함께 통일교로부터 탈주하여 문형진이 세운 '세계평화통일성전'(생츄어리)로 들어갔다. 통일교 신자라는 분류는 이 문국진에게만 해당된다. [각주] [[분류:동명이인/ㅁ]][[분류:1925년 출생]][[분류:법의학]][[분류:고려대학교]][[분류:의학·약학 교수]][[분류:1970년 출생]][[분류:통일교 신자]][[분류:서울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