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14년 출생]] [[분류:2002년 사망]] [[분류:이집트의 축구선수]] [[분류:알 아흘리 SC/은퇴, 이적]] [[분류:이집트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분류: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분류:이집트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분류:이집트의 축구감독]] [[분류:알 아흘리 SC/역대 감독]][[분류:카이로 출신 인물]] || [[파일:Mustafa Mansour.jpg|width=130]] || [[파일:8739D3E1-0C59-4705-98FA-6C169B11DAE9.jpg]] || || 선수 시절의 모습 || 말년. 이집트의 자택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 || 이름 || 무스타파 카멜 만수르[br](مصطفى كامل منصور / Mustafa Kamel Mansour) || || 생년월일 || [[1914년]] [[8월 2일]] || || 사망년월일 || [[2002년]] [[7월 24일]]^^(항년 88세)^^ || || 국적 || [[파일:이집트 국기.svg|width=28]] [[이집트]] || || 출신지 || [[카이로]] || || 포지션 || 골키퍼 || || 신체조건 || 불명 || || 등번호 || -[*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 || 소속팀 || [[알 아흘리 SC(이집트)|알 아흘리 SC]] (?-?)[br]퀸즈 파크 FC (1937-1939)[br]알 아흘리 SC (?-?) || || 국가대표 || 불명 || || 감독 || 알 아흘리 SC (?-?) || [목차] == 생애[* 출처: [[http://news.bbc.co.uk/sport3/worldcup2002/hi/history/newsid_1962000/1962689.stm|BBC 인터뷰]], [[http://www.qpfc.com/people/mmansour.htm|qpfc]], 위키피디아, 11v11] == === 선수 생활 === 만수르의 축구 인생은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억지로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두 팀이 시합을 하는데 골키퍼가 부족했고 학교 선생님이 만수르를 골키퍼에 넣어 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만수르는 나름 잘할 자신이 있었고 그 자신감은 실제가 되었다. 그렇게 학교 대표로 축구를 하게 된 만수르는 [[알 아흘리 SC(이집트)|알 아흘리 SC]]에 입단했고 본격적으로 축구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다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이집트]]가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고 만수르는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영연방 팔레스타인]]과의 지역예선에서 2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영연방 팔레스타인을 손쉽게 제압한 이집트 대표팀은 헬완호를 타고 나흘에 걸쳐 [[이탈리아]] [[나폴리]]에 갔다. 이집트 대표팀의 월드컵 첫 상대는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헝가리]]였고 만수르는 나름 해볼만하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수르의 회고에 의하면 이탈리아 출신 주심 리날도 발라시나는 2대2로 팽팽히 맞서던 상황에서 [[압델라흐만 파우지|파우지]]의 드리블 돌파 골을 [[오프사이드]]로 무효화시켰다. 게다가 4번째 골인 [[톨디 게저]]의 골 상황에선 만수르가 헝가리의 크로스를 끊었음에도 센터 포워드 텔레키 팔은 무릎으로 만수르의 가슴을 가격하고 팔꿈치로 코뼈를 부러뜨렸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만수르를 골라인 바깥으로 밀어버렸는데도 발라시나 주심은 헝가리의 골을 선언했다. 그런 [[편파판정]]으로 인해 결국 이집트는 헝가리에 2대4로 분패했고 발라시나를 포함한 심판진들은 관중들에 엄청난 야유와 욕설 세례를 들었다. 만수르는 월드컵 이후 대표팀 감독이던 제임스 맥레어에 도움으로 조던 힐 트레이닝 대학에 체육 교육학 학위를 따기 위해 입학했다.[* 맥레어는 [[무함마드 라티프]]도 [[레인저스 FC]]에 입단시키기도 했다.] 그런 도중에 [[1936 베를린 올림픽|1936년 올림픽]]에도 참가했지만 이집트는 1라운드에서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리아]]에 1대3으로 패했다. 1937년에는 스코틀랜드의 퀸즈 파크에 입단하게 되었고 2시즌 동안 49경기의 출장수를 기록했다. 만수르가 퀸즈 파크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경기는 [[레인저스 FC]]를 상대로 한 글래스고 컵 4강전이었다. 여기서 그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레인저스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었고 연장 혈투 끝에 퀸즈 파크는 패했지만 만수르의 플레이는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2년간의 활약을 본 [[셀틱 FC|셀틱]]은 만수르에게 5천 파운드의 돈과 함께 프로 계약을 제의했다. 하지만 축구로 돈을 버는 것에 큰 흥미가 없던 만수르는 그 제안을 거절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이집트로 돌아갔다. === 이후 === 만수르는 이후 친정팀 알 아흘리에서 감독으로 활동했고 내각의 각료로 정치계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 플레이 스타일 & 평가 == 퀸즈 파크 클럽의 공식 역사서의 저자 봅 크램시는 만수르를 좋은 골키퍼였으며 많은 인상적인 시합을 남겼다고 평했다. == 뒷이야기 == * 만수르는 2002년의 [[BBC]] [[인터뷰]]에서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1958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대표팀]]에 대한 평을 남겼다. 그 팀이 자기가 본 최고의 팀이었으며 [[펠레]]는 그 때 팀의 중심이 아니었고 [[가린샤]]와 [[지지(축구선수)|지지]]가 그 위대한 팀의 최고였다고 평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