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gcolor=#315288><tablebordercolor=#315288><bgcolor=#fff>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55호}}}]]''' || ||<-2> {{{#fff {{{+1 '''무령왕비 금제 관식'''}}}[br]{{{-1 武寧王妃 金製 冠飾}}}}}}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중앙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width=80> '''{{{#fff 소재지}}}''' ||<bgcolor=#fff>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 '''{{{#fff 분류}}}''' ||<bgcolor=#fff> 유물 / 기타종교공예 / 유교공예 / 의례용구 || || '''{{{#fff 수량/면적}}}''' ||<bgcolor=#fff> 1쌍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74년 7월 9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백제|백제시대]] || [[파일:무령왕비 금제 관식1.jpg|width=565]] [목차] == 개요 == 武寧王妃 金製 冠飾.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에서 1971년 여러 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무령왕비의 [[금(원소)|순금]] 관식 1쌍.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고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파일:무령왕비 금제 관식2.jpg]] 복원을 완료한 모습. 왼쪽 관식 높이 22.6 ㎝, 너비 13.4 ㎝ 오른쪽 관식 높이 29.2 ㎝, 너비 13.4 ㎝ 1971년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비의 금제 관식으로, 유물의 제작연대는 6세기이다. 당시 왕릉에서 관 꾸미개는 모두 4점이 출토되었는데 [[왕]]과 [[왕비]]의 머리 부분에 각각 2점씩 쌍을 이룬 채로 발견되었다. 왕의 것은 [[무령왕 금제 관식]]이란 명칭으로 국보 제154호로 따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발굴 당시 일부분이 파손된 상태였는데 2012년, 발굴 40년만에 보존처리 및 원형복원을 한 것이다.[[http://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276257#08W8|충청타임즈 : 무령왕비 금제관식 원형 회복]] 전체적인 제작방법은 [[무령왕 금제 관식]]과 동일하게 2㎜ 두께의 얇은 순금판을 두드려 편 후 문양에 따라 오려내는 기법을 사용하였지만, 왕의 것과는 달리 금달개, 영락 등의 장식은 따로 달지 않았다. 그리고 순금으로 이루어진 왕의 것과는 달리 아래쪽 부분은 따로 [[구리(원소)|구리]]로 된 것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화현병 인동당초문 문양은 [[중국]]으로부터 유행한 것으로 대표적으로 이보다 앞선 중국 [[육조시대]] 전기 [[하남성]](河南省)에서 발견된 고분현실 석문 빗살무늬 석조의 문양이 이 무령왕, 무령왕비 금제 관식과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관식에 사용되는 인동당초문은 계급 사회의 지위를 나타내려는 의도로 시문되는 중국의 전통적 귀족 문양으로, 중국 육조에서 내려온 [[불교]] 미술의 영향이 짙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한반도 남부에 유행했던 중국 문화에 대해 연구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이보다 1세기 정도 앞서 만들어진 [[신라]]의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금관총 금제 관식]], [[천마총 금제 관식]] 등과 함께 [[한국]]의 고대 금제 관 꾸미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매우 미려하고 호사스러운 형식을 보여주는 유물로, [[무령왕 금제 관식]]과 함께 백제의 순황금 유물 중 최고의 예술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되므로, 신라의 각종 [[금관]]([[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금관총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천마총 금관]], [[서봉총 금관]], [[금령총 금관]] 등) 및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 등의 최고 위세품들과 함께 [[한국]] 고대사에 있어 최상위 예술품으로 손꼽힌다. 6세기 백제의 화려한 금 공예술을 보여주는 왕비의 유물로, 그 화려함은 가히 으뜸이라 할 만하다. 이에 1974년 7월 9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파일:무령왕비 금제 관식3.png]] 1955년부터 매년 [[공주시]]와 [[부여군]]에서 개최하는 백제문화제의 마스코트 중 하나인 '금이'가 이 무령왕비 금제 관식을 모티브로 제작된 것이다. 옆에 있는 짝꿍 마스코트 '동이'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모티브로 했다.[[http://baekje.org/kor/html/sub01/010101.html|백제문화제 홈페이지]], [[http://www.baekje.org/kor/html/sub01/010202.html|백제문화제 상징물]] == 바깥고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581526&cid=51898&categoryId=54036|향토문화전자대전 : 무령왕비 금제관식]]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1080&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무령왕비 금제관식]]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15710&cid=51293&categoryId=51293|e뮤지엄 : 무령왕비 금제관식]] * [[https://ko.wikipedia.org/wiki/무령왕비_금제관식|한국어 위키백과 : 무령왕비 금제관식]]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4100&cid=40942&categoryId=37404|두산백과 : 무령왕릉 왕비금관식]] == 국보 제155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550000,11&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무령왕비 금제 관식 (武寧王妃 金製 冠飾)]]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왕의 관식과 함께 출토된 왕비의 금제 관(冠)장식으로, 모양과 크기가 같은 한 쌍으로 되어 있다. > >높이 22.6㎝, 너비는 13.4㎝로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조사되었을 때, 왕비의 널(관) 안쪽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 >금판에 무늬를 뚫어서 장식하고 밑에 줄기를 달았다. 투조(透彫)로 표현된 문양은 좌우대칭을 이루도록 정돈되어 정연한 느낌을 준다. 문양은 중심부의 연꽃받침 위에 놓인 병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덩굴무늬가 있고 병 위에는 활짝 핀 꽃 한송이가 있으며, 중간부터 위쪽의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솟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무령왕릉 안에서 같이 발견된 왕의 관(冠) 장식보다 규모가 조금 작고 구슬 등의 장식이 달려있지 않아 간결한 인상을 준다. >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2)과 왕비의 무덤으로, 벽돌을 이용해 만든 벽돌무덤(전축분)이며,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6세기 전반 백제문화의 수준과 묘제, 사장 등의 일면을 알려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지석(誌石)은 삼국시대 고분 중 최초로 무덤에 묻힌 주인과 만든 시기를 밝혀주는 자료가 되고있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백제의 금제유물]][[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