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gcolor=#315288><tablebordercolor=#315288><bgcolor=#fff>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65호}}}]]''' || ||<-2> {{{#fff {{{+1 '''무령왕 발받침'''}}}[br]{{{-1 武寧王 足座}}}}}}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공주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width=80> '''{{{#fff 소재지}}}''' ||<bgcolor=#fff>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 || '''{{{#fff 분류}}}''' ||<bgcolor=#fff> 유물 / 기타종교공예 / 유교공예 / 의례용구 || || '''{{{#fff 수량/면적}}}''' ||<bgcolor=#fff> 1개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74년 7월 9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백제|백제시대]] || [[파일:국보165호무령왕발받침1.jpg|width=565]] [목차] == 개요 == 武寧王 足座. 무령왕 발받침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에서 1971년 여러 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무령왕]]의 장례용 목제 [[받침|발받침대]]다. 무령왕릉 [[발굴]]은 한국 현대 [[고고학]]사에서 [[무령왕릉#s-2|최고이자 최악의 발굴]]로 꼽히는 사례인데, 발굴 당시 [[개판]] 엉망진창이었던 현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본 발받침을 비롯하여 백제의 귀중한 유물들이 대체로 온전한 상태로 상당수 출토됐다.[* 무령왕릉에서 국보 제154호 [[무령왕 금제 관식]], 국보 제155호 [[무령왕비 금제 관식]], 국보 제156호 [[무령왕 금귀걸이]], 국보 제157호 [[무령왕비 금귀걸이]], 국보 제158호 [[무령왕비 금목걸이]], 국보 제159호 [[무령왕 금제 뒤꽂이]], 국보 제160호 [[무령왕비 은팔찌]],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석수]], 국보 제163호 [[무령왕릉#s-6|무령왕릉 지석]], 국보 제164호 [[무령왕비 베개]], 국보 제165호 '''무령왕 발받침''' 등이 함께 출토됐다.] 무령왕 발받침은 발견 당시 무령왕의 목관 안에 안치된 상태였다고 하며, 무령왕비의 발받침도 무령왕비의 목관 안에서 발견됐지만 국보로는 무령왕의 것만 지정됐다. 무령왕 발받침은 1974년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6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국보165호무령왕발받침2.jpg|width=800]]|| || 무령왕 발받침 || 무령왕 발받침은 높이 19.5cm, 길이 43.2cm, 폭 9.8cm 크기의 장례용 나무 발받침으로, 여기에 시신의 발을 올려서 안치하는 용도이다. 본 발받침의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상당히 양호하다. 무령왕 발받침은 [[무령왕비 베개|베개]]와 마찬가지로 나무토막을 역 [[사다리꼴]] 모양으로 다듬었지만, 베개와는 달리 두 발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중심을 W자형으로 홈을 깊게 파냈다. 본 발받침은 표면에 검은 [[옻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흑갈색을 띄고 있다. 또한 표면을 [[거북이]]등처럼 [[육각형]] 무늬를 이루도록 [[금(원소)|금]]판을 오려 만든 금띠로 장식했는데 금띠들의 길이는 4cm, 폭은 0.7cm 가량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금띠가 모두 온전하게 남아 붙어 있는 것은 아니며 부식되어 떨어진 부분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육각형의 각 모서리와 육각형 가운데의 빈 공간에는 여섯 잎을 가진 금꽃을 금못으로 박아 장식했다. 금꽃 장식에서 인상적인 것은 꽃의 정가운데에 마치 암술이나 [[수술#s-3]] 같은 장식을 달아놓은 것이다.[* 이를 영락(瓔珞) 또는 보요(步搖)로 보기도 한다. 영락과 보요에 대해선 다음의 링크 참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81981&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영락]],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0923&cid=42635&categoryId=42635|미술대사전(용어편) : 보요]]] 이 금꽃들도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파일:무령왕비 발받침_PS0100100400100062500000_0.jpg]]|| || 무령왕비의 발받침.[* 무령왕비의 발받침은 전체적인 형태는 양호하게 남아 있지만, 세부 장식들은 거의 탈락되어 남아 있는 부분이 몇 없다.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 무령왕의 장례유물과 무령왕비의 것들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세부 장식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왕비의 것은 붉은 [[단청]]칠인 반면에 왕의 것은 검은 옻칠이라는 점에 있다. 백제의 왕실에서는 옻칠이 왕을 상징하며 가장 높은 격을 드러내는 장식이었으리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왕비의 것에는 금박을 칠한 반면에 왕의 것에는 금판을 오려 붙였다는 점에서도 서로 차이가 보이며, 여기서 또 하나의 차이가 비롯되는데 왕비의 것에는 금박으로 칠하고 회화적인 장식을 그려넣은 반면에 왕의 것에는 금칠을 하는 대신 금판을 오려 붙이고 금꽃 장식 외에는 딱히 회화적인 장식은 안 그려넣었다는 점이다. 이리하여 왕의 장례유물은 왕비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단순하지만 강건하고 남성적인 중후한 느낌을 준다고 평가 받는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580683&cid=51898&categoryId=54036|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무령왕 발받침]]]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무령왕 발받침은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백제 왕족의 장례용 물품이라는 점, 몇 점 남아있지 않아 아주 희귀한 백제의 금으로 장식된 목조 공예품이라는 점, 무령왕릉 발굴 당시 거의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한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출토지가 명확하다는 점 등에서 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무령왕 발받침은 이러한 가치들을 인정받아, 발견된지 3년 뒤인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 바깥고리 == * [[https://ko.wikipedia.org/wiki/무령왕 발받침|한국어 위키백과 : 무령왕 발받침]]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9492&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무령왕 발받침]]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580683&cid=51898&categoryId=54036|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무령왕 발받침]]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15702&cid=51293&categoryId=51293|e뮤지엄 : 무령왕 발받침]]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2257&cid=40942&categoryId=37404|두산백과 : 무령왕릉 족좌]] == 국보 제165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650000,34&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무령왕 발받침 (武寧王 足座)]]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의 발을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 발 받침이다. > >윗부분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은 사다리꼴 통나무의 중앙을 W자로 깊게 파서 양 발을 올려놓게 만들었다. 전면에 검은색 옻칠을 하고 폭 0.7㎝정도의 금판을 오려 거북등 무늬를 만들었으나 일부는 떨어져 없어졌다. 6잎의 금꽃을 거북등 무늬 모서리와 중앙에 장식하고, 꽃판 가운데에 옛날 부인의 머리장식 중 하나인 보요(步搖)를 매달아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백제의 공예]][[분류:백제의 금제유물]][[분류:국립공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