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프랑스의 축구단, rd1=몽펠리에 HSC)] [include(틀:옥시타니의 데파르트망)] ||<-2><table width=400><tablealign=right><#15B><table bordercolor=#d32a31><tablebgcolor=#15B> '''{{{+1 '''{{{#fff Montpellier}}}'''}}}[br]{{{+1 {{{#fff 몽펠리에}}}}}}''' || ||<-2><bgcolor=#FFFFF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essinblasonmontpellier.jpg|width=100%]][br]문장 || || '''{{{#fff 국가}}}''' ||<bgcolor=#fff>[[프랑스]] || || '''{{{#fff 레지옹}}}''' ||<bgcolor=#fff>[[옥시타니]] || || '''{{{#fff 데파르트망}}}''' ||<bgcolor=#fff>에로(34) || || '''{{{#fff 시간대}}}''' ||<bgcolor=#fff>UTC+1 ([[서머타임]] 준수) || || '''{{{#fff 한국과의 시차}}}''' ||<bgcolor=#fff>-7시간 || ||<tablealign=left><table width=500><table bordercolor=#d32a31><bgcolor=#fff> [include(틀:지도, 장소=프랑스 몽펠리에,너비=100%,높이=100%)] || ||<table width=500><tablealign=left><#ffffff><table bordercolor=#d32a31><tablebgcolor=#03386a> [[파일:Montpellier_Place_de_la_Comédie.jpg|width=100%]] || ||<white> [[파일:Gate_Montpellier.jpg|width=100%]] ||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 레지옹의 도시. 프랑스 전체를 기준으로는 8번째로 큰 도시이며, 남부 지역 한정으로는 [[마르세유]]와 [[니스]]에 이은 제 3의 도시이다. 에로 주의 주도 역할을 겸하고 있다. == 역사 == 프랑스 남부의 주요 도시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식민 도시로 개척되면서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마르세유.] 특이하게도 몽펠리에는 중세 도시로 출발한다. 몽펠리에 인근의 [[https://en.wikipedia.org/wiki/Villeneuve-l%C3%A8s-Maguelone|마글론]]이라는 도시가 10세기 무렵 지중해 일대 해적들의 창궐로 인하여 초토화되자, 이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가 마글론을 포기하고 방어가 보다 유리한 내륙지방에 도시를 하나 건설하는데, 이것이 몽펠리에 역사의 출발이다. 이후 12세기 무렵이 되면 지중해 무역을 통하여 크게 번성하며, [[가톨릭교회]]에 의해 [[법대]]와 [[의대]]가 설립되면서 교육의 중심지로도 부상하게 된다. 이 시기가 몽펠리에의 최선정기로 당시 프랑스 내에서 수도 [[파리(프랑스)|파리]] 정도를 제외하면 몽펠리에보다 대규모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중세에는 장원을 기반으로 ~~비의도적인~~ 지방 분권이 훌륭하게 이루어진 사회여서,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정말 자그마한 규모이다. 인구가 대략 4만명 정도(...).~~군청소재지 생각하면 된다~~] 13세기에는 영주 간의 [[정략결혼]]을 통해 [[아라곤 왕국]]의 영토로 잠시 편입되기도 하지만 아라곤 왕국은 몽펠리에의 자치권을 상당부분 인정해줬고, 1348년 [[필리프 6세]]가 몽펠리에를 매입하면서 다시 프랑스의 영토가 된다. 15세기 무렵까지도 몽펠리에는 여전히 프랑스 남부 최대의 경제 도시였으나, 이 무렵 전유럽을 덮친 [[흑사병]]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고는 새로이 급부상한 [[마르세유]]에게 결국 위상을 내주고 만다. 한편 16세기 [[종교개혁]]부터 17세기의 [[위그노 전쟁]] 시기까지 약 한 세기 동안 몽펠리에는 [[위그노]]들의 본거지였다.[* 일찍이 중세 시기 몽펠리에에서 무역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도 종교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는 몽펠리에 특유의 지역 분위기 탓이 컸다. 종교적 극단의 시대였던 [[십자군 전쟁]] 무렵에도 무슬림들과 유대교도들이 별다른 박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몽펠리에.] 19세기 중반부터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몽펠리에 역시 공업화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옆동네 마르세유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 무렵부터 몽펠리에는 포도주 생산지로도 명성을 떨쳤는데, 다소 역설적이게도 이 포도주가 상당히 인기를 끌면서 주민들이 공업보다는 포도 경작에 몰두하면서 산업화 속도가 저해된 것도 있다. 또한 몽펠리에는 [[앙시앵 레짐]] 체제 당시 마지막까지도 귀족들이 봉건적 특권을 향유하던 곳 중 하나였기 때문에 산업 혁명을 뒷받침할 정치적 개혁이나 부르주아 계층의 숫자가 미비하기도 했다. 결국 몽펠리에는 그저 그런 지방 도시 수준으로 전락한다. 그래도 에로 주 안에서는 여전히 최대 도시기이는 했다.[* 1911년 당시 통계를 보면 몽펠리에의 인구는 10만이 채 안된다. 옆동네이자 한때 라이벌이었던 마르세유는 이 당시에 이미 60만 가까이에 육박.] 몽펠리에가 재도약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알제리 전쟁]] 이후 알제리가 독립하자 소위 피에 누아르라고 불렸던 프랑스계 이주민들이 재정착한 곳 중 하나가 바로 몽펠리에였기 때문. 1962년부터 1972년까지 몽펠리에는 연평균 5% 정도의 인구 성장을 보여주었는데, 피에 누아르들의 재정착이 인구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교통 == [[몽펠리에 메디테라네 공항]]의 소재지이다. == 여담 == * 프랑스 최대의 교육 도시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상술했듯이 이미 중세 무렵부터 법대와 의대가 명성을 떨쳤고, 오늘날에도 30만 가량의 인구 가운데 30% 정도가 학생인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마찬가지로 교육으로 유명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와 자매도시이다. *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귀스트 콩트]]가 이 곳 출신이다. 또한 [[장 자크 루소]]와 [[앙드레 지드]] 역시 한 때 이곳으로 이주한 적이 있다. * 이 곳에 위치한 몽펠리에 식물원(Jardin des plantes de Montpellier)은 1593년에 세워졌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원]]이다. * [[미국]]에도 동명의 도시들이 존재하는데 물론 이 도시에서 따온 것이며, 발음은 영어화하여 '[[몬트필리어]]'로 불린다. 이 중 가장 크고 잘 알려진 도시는 미국 [[버몬트]] 주의 주도 몬트필리어이다. [[분류:프랑스의 도시]][[분류:옥시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