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ruby(木, ruby=もく)][ruby(羅, ruby=ら)][ruby(斤, ruby=こん)][ruby(資, ruby=し)]}}}'''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백제]]의 [[근초고왕]] 대의 장수.[[http://www.sen2.net/contents/history/rekichi/14160000/%E6%9C%A8%E7%BE%85%E6%96%A4%E8%B3%87|참고 자료]] 국내나 [[중국]]의 [[사서]]에는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으며, 오직 [[일본서기]]에서만 존재가 언급되는 인물이다. [[대성팔족]] 가운데 하나였던 목(木)씨로, 목씨 인물들 중에서는 기록상 최초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목라근자 이후에 가야지역을 기반으로 목씨 세력이 성장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목씨의 가야경영 자체가 일본측 기록에서만 확인되므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진구황후]] 시기인 [[3세기]]의 인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의 고질적인 문제인 [[이주갑인상]]에 대해 고려했을때 [[근초고왕]] 시기의 인물이었음이 추정 가능해진다. 즉, 근초고왕이 벌였던 백제의 [[가야]] 정벌 당시에 핵심 인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겠지만 일본서기에서는 왜국의 [[진구황후]]가 주도했다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진구황후 [[삼한정벌]] 이야기 자체가 그렇듯이 영 확증할 수 없는 기록이다. [[일본서기]] 스스로 출병도 백제에서 했고, 가야 정벌군 주력도 다 백제라고 적고 있다(...). == 활약상 == "신공 49년(서기 369년) 목라근자는 [[사사노궤]]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나가 [[탁순국]]([[창원]])에서 모여 [[신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그리고 뒤이어서 [[비지국|비자벌]]([[창녕]]), [[금관국|남가라]]([[김해]]), [[탁국]](영산), [[안라국|안라]]([[함안]]), [[다라국|다라]]([[합천]]), [[탁순국|탁순]]([[창원]]), [[반파국|가라]]([[고령]]) 등의 7국을 평정하고, 군사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서 고해진에 이르러 [[남만]] [[침미다례]]를 도륙하고 백제에게 주었다” 이 기록에 대해서는 [[가야제국|가야]]를 모두 군사적으로 평정하지는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 의문점이 있기도 해서, 백제가 신라와 가야를 군사력으로 격파했다기 보다는 [[외교]]적으로 회유했다는 주장도 있다. 비슷한 시기 [[마한]]의 한 국가로 추정되는 또는 포상팔국(浦上八國)의 한 국가로도 추정되는 [[침미다례]]에 대해서는 '도륙'이라는 강경한 표현을 쓴 것과 달리 가야 7국에 대해서는 '평정(平定)'했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단순히 손아귀에 넣었다는 정도 의미일 뿐 그들의 기반 자체를 완전히 해체했다거나 지배세력의 교체를 단행하는 등 극단적 강경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되지는 않고 이후 전개되는 기록이나 [[고고학]]을 봐도 가야 세력의 기반은 거의 그대로 온존했고 이후 오랫동안 연합군사작전을 펼치는 등 우호관계를 유지한다. 실제로 가야는 백제군에게 왕창 깨진 것치고는 이후로 멸망하지 않고 잘 지냈으며, 일본서기에서는 백제 [[성왕(백제)|성왕]]이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안라, 가라, 탁순의 한기들과 부형자제(父兄子弟)가 되었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어쩌면 군사적으로 공격하여 기선제압을 한 후 외교적으로 회유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아들 [[목만치]]가 이 목라근자의 군공을 바탕으로 가야에서 한 벼슬 했다는 기록까지 고려하면 목라근자가 어느 정도 가야권에 기반을 만들어둔 것은 맞는 듯 하다. 382년, 백제와 협력관계에 있던 일본의 장군 [[카츠라기노 소츠히코]]~~라는 또라이~~가 여자에게 홀딱 넘어가(...) ~~치라는 신라는 내버려두고~~가야국[* 어느 국가인지는 불명이나, 뒤에 이시품왕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금관국]]으로 생각된다.]을 쳐서 [[이시품왕]]이 백제로 도망오자 목라근자가 다시 나서서 왜군을 격파하고 금관국왕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한편 목라근자는 훗날에 [[신라]] 여자와 혼인하여 아들인 [[목만치]]를 얻었다고 하는데, 목만치는 아버지의 공이 큰 덕분에 임나[* 일본서기에서의 가야지방의 통칭]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구이신왕]]이 즉위하자 권신이 되어 높은 권세를 부렸다고 한다. == 의문점 ==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인물격인 진구황후와 얽혀있기 때문에 목라근자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근거가 없는 왜곡된 기록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대체로 백제가 가야를 공격한 것은 사실로 인정하는 추세다. 그 시기에 근초고왕이 활발한 정복 활동을 벌였던 것이 사실이고, 일본서기에 존재하는 후대의 기록을 보면 [[성왕(백제)|성왕]]을 왜국의 [[긴메이 덴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서술했지만[* 백제와 일본이 동맹을 맺은 사실을 일본을 우위에 놓고 황실을 신성화하기 위해서 왜곡했다는 것이 옳다.], 백제가 가야에 대한 영향력을 보였던 것과 관련 기록들은 [[삼국사기]]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백제]]는 신라와 가야 7국을 묶어 강력한 패권을 형성하고 한반도 남부의 진정한 패자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현장에서 이를 직접 주도한 인물인 목라근자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 현대 매체에서 == * [[게임]] [[천년의 신화]]에서는 백제의 영웅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거대한 창을 쓰는 근접 공격계 보병 영웅. --근데 들고 있는 무기가 잘못 보면 [[삽]]처럼 보인다.-- --삽이다.-- 목라근자의 모델링은 [[신라]] 미션의 황산벌 전투 미션에서 [[계백]]으로 재활용되었는데 얼굴 포트레이트는 [[근구수왕]] 것을 --우려먹었다--사용했다. [[성우]]는 '''[[엄상현]]'''인데 제법 거친 이미지로 연기했다. * [[근초고왕(드라마)]]에서는 한정수가 연기했다. 초반부터 근초고왕을 따르는 심복 무사로 이때는 '복구검'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등장하다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목라근자로 개명한다.(…)[* 본 드라마는 초반부터 등장해야 할 인물들은 나오지 않고 정체불명의 인물들만 잔뜩 등장하다가, 비판을 듣자 개명드립을 비정상적으로 때려가며 해당 인물들을 실존인물들로 바꾸는 짓거리를 저질렀다. 때문에 본 인물은 원래 별개의 인물로 예정되었다가 비판으로 인해 적절해 때려맞춘 케이스일 가능성이 높다.] [각주] [[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백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