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bordercolor=#5F9EA0><table align=center><table width=430><#ffffff><:>[[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ing_Zahir_Shah_of_Afghanistan_in_1963.jpg|width=400]]|| ||<:><-2><#5F9EA0>'''{{{#white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국왕}}}'''|| ||<:><#5F9EA0>'''{{{#white 본명}}}'''||<#ffffff>'''모하마드 자히르 샤([[파슈토어]]·[[페르시아어]]: محمد ظاهر شاه)''' || ||<:><#5F9EA0>'''{{{#white 출생}}}'''||<#ffffff>'''[[1914년]] [[10월 15일]]''' || ||<:><#5F9EA0>'''{{{#white 사망}}}'''||<#ffffff>'''[[2007년]] [[7월 23일]] (만 92세)''' || ||<:><#5F9EA0>'''{{{#white 왕조}}}'''||<#ffffff>'''[[바라크자이 왕조]]''' || ||<:><#5F9EA0>'''{{{#white 부족}}}'''||<#ffffff>'''[[파슈툰족]]''' || ||<:><#5F9EA0>'''{{{#white 재위기간}}}'''||<#ffffff>'''[[1933년]] [[10월 8일]] ~ [[1973년]] [[7월 17일]]''' || ||<:><#5F9EA0>'''{{{#white 종교}}}'''||<#ffffff>'''[[수니파]] [[이슬람]]''' || ||<:><#5F9EA0>'''{{{#white 배우자}}}'''||<#ffffff>'''후마이라 베굼''' || ||<:><#5F9EA0>'''{{{#white 자녀}}}'''||<#ffffff>'''7남 2녀''' || [목차] == 개요 ==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6대 국왕이자, 아프가니스탄 토후국 시기부터 존속해온 [[바라크자이 왕조]]의 마지막 지도자이다. == 생애 == 1933년에 부왕 모하마드 나디르 샤가 암살되자 19살 나이에 즉위하였다. 2차대전 후 외국 고문들을 고용하여 국가를 근대화하려 하였고, 분파주의와 정치 투쟁에도 불구하고 1964년에 새 헌법을 채택하여 자유선거와 의회제도 도입하였다 그의 치세였던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40년간, 아프가니스탄은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안정기를 맞았다. 아이러니한 건 당시 세계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혼란기였는데, 아프가니스탄은 이 시기가 근현대사상 최고로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던 시절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작 [[베트남 전쟁]]까지 끝나면서 세계에 비교적 평화가 찾아오자 아프가니스탄은 인세 지옥이 되어버린다(...) [[파일:external/static.munpia.com/EzkKtBRPpP9GGify.jpg|width=500]] [[파일:external/static.munpia.com/eoPmsWqTOFJl44y9.jpg|width=500]] [[파일:external/static.munpia.com/NjWMG3DXSVQKOP0P.jpg|width=500]] [[파일:external/static.munpia.com/ffPoAT3Smnt0guXZ.jpg|width=500]] [[파일:external/static.munpia.com/GspDNV9ihPxcI3n2.jpg|width=500]] [[파일:external/static.munpia.com/S2YeEzpwTRh4d6BD.jpg|width=500]] [[파일:/pds/201301/12/90/f0243590_50f112f414bbe.jpg|width=500]] [[파일:external/02varvara.files.wordpress.com/01-paghman-gardens-before-1967-e1279737587994.jpg|width=500]] 아프가니스탄 왕국 시대의 사진들.[* 70년대 초반까지의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의 1인당 GDP[[http://www.google.com/publicdata/explore?ds=d5bncppjof8f9_&ctype=l&met_y=ny_gdp_mktp_kd_zg#!ctype=l&strail=false&bcs=d&nselm=h&met_y=ny_gdp_pcap_cd&scale_y=lin&ind_y=false&rdim=region&idim=country:KOR:AFG&ifdim=region&tdim=true&tstart=-288003600000&tend=153759600000&hl=ko&dl=ko&ind=false|#]]를 비교해 보면 1965년까지는 한국이 앞서다가 1966~67년 아프가니스탄이 한국을 근소하게 추월했다. 그러나 1968년 한국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추월한 이래 두 나라 사이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이런 모습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걸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위 사진과 같은 모습은 어디까지나 수도인 카불에 국한된 것이었고 나머지 지역은 100년전 그대로의 모습이고 현재도 딱히 변한것은 없다. [[파일:external/cdn.mirror.wiki/02-paghman-gardens-after-2007-e1279737631767.jpg|width=600]] [[탈레반]]이 집권하고 난 뒤의 아프가니스탄. 위의 사진과 비교하면 정말 충격적이다. 참고로 바로 위의 사진과 같은 장소다. == 퇴위 == 1973년 7월 17일 왕의 사촌이었던 [[모하마드 다우드 칸]]은, 왕이 안질과 요통 치료를 위해 [[이탈리아]] [[로마]]에 체류하고 있는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켰다. 자히르 샤는 졸지에 떠돌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다우드 칸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78년 다우드 칸 대통령이 인민민주당 세력이 일으킨 쿠데타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오히려 더욱 혼란해졌다. 다음해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본래 자히르 샤는 다우드 정권이 무너지고 집권한 인민민주당 공산 정권에게 귀국 의사를 요청했지만 공산주의 노선을 표방하던 인민민주당 정권 측에게 거부당해 귀국하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무자헤딘]] 간의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또 그다음에는 [[탈레반]]과 [[북부동맹(아프가니스탄)|북부동맹]]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자히르 샤의 귀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탈레반 정부가 괴멸되고 나서야 조국의 땅을 밟아볼 수 있었다. 이후 [[국부]] 칭호를 받았다. == 귀환과 죽음 == ||<:> [[파일:zahir shah.jpg|width=400]]|| ||<:> [[2002년]], 축출된 지 29년 만에 귀환한 샤||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1년 동안 재직한 채수문 중령은 이 당시, 지옥이 되어버린 조국을 거의 30년만에 와서 본 자히르 샤가 통곡하며 안타까워했다는 일을 현지에서 들었다고 한다. 2007년 7월 23일 사망했다. 죽기 직전 유언으로 "난 저세상에 가면 알라에게 천벌을 받을 것이오! 아름답던 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으니..." 라는 말을 남겼다. ||<:> [[파일:tomb of shah.jpg|width=400]]|| ||<:> 왕의 무덤은 [[카불]] 동쪽 언덕 위에 세워졌다.|| == 트리비아 == * 여담으로 그가 실각하지 않고 계속 재위해 있었다면 [[장수한 왕들|74년간 재위했었을 것이다.]] 만 40년에서 고작 3개월도 덜 모자라게 재위했으나, 퇴위 후에도 34년을 더 살아 아프가니스탄의 온갖 불행을 모두 보고 말았다. * [[아프가니스탄]] 6, 7, 8대 대통령이였던 [[하미드 카르자이]]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왕정복고]] 운동을 펼쳤었다. 그러나 나이도 너무 많았던지라 실행되지 못했다. 물론 일각에선 아프가니스탄 정국의 안정을 위해 자히르 샤의 아들이나 손자라도 앞세워서 왕정복고를 시도해보자는 의견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 매체에서 == * [[Hearts of Iron IV]]에서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시대에 맞게 프로필은 20대 시절 모습이다. [[분류:망국의 군주]][[분류:아시아의 군주]][[분류:지폐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