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전연 황제)] ||<-2><tablealign=right><tablewidth=350><tablebordercolor=#233067><tablebgcolor=#233067>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037 0%, #233067 20%, #233067 80%, #000037)" '''{{{#fff 전연 제3대 황제}}}[br]{{{#fff {{{+1 幽帝 | 유제}}}}}}'''}}} || ||<width=80> '''[[묘호|{{{#fff 묘호}}}]]''' ||<bgcolor=#ffffff><(> 없음 || || '''[[시호|{{{#fff 시호}}}]]''' ||<bgcolor=#ffffff><(> 유황제(幽皇帝)[* 서연의 모용홍이 추증한 시호.] / 헌무황제(獻武皇帝)[* 남연의 모용덕이 추증한 시호.] || || '''[[연호|{{{#fff 연호}}}]]''' ||<bgcolor=#ffffff><(> 건희(建熙, 360년 1월 ~ 370년 11월) || || '''[[성씨|{{{#fff 성}}}]]''' ||<bgcolor=#ffffff><(> 모용(慕容) || || '''[[휘|{{{#fff 휘}}}]]''' ||<bgcolor=#ffffff><(> 위(暐) || || '''[[자(이름)|{{{#fff 자}}}]]''' ||<bgcolor=#ffffff><(> 경무(景茂) || || '''{{{#fff 부모 관계}}}''' ||<bgcolor=#ffffff><(> 부황: [[모용준]] / 모후: 단씨 || || {{{#fff '''생몰 기간'''}}} ||<bgcolor=#ffffff><(> 350년 ~ 384년 음12월(35세)[* 자치통감 기준, 진서의 향년을 적용.] || || {{{#fff '''재위 기간'''}}} ||<bgcolor=#ffffff><(> 360년 음1월 ~ 370년 음11월(11년)[* 자치통감 기준, 진서의 재위 기간을 적용.]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연]]의 제3대 군주. 휘는 위(暐), 자는 경무(景茂), 시호는 유(幽)이다. [[모용준]]의 3남으로, 어려서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 모용각의 섭정을 받아 전연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모용각이 죽고 뒤이어 집권한 숙조부 모용평의 부패로 전연은 점점 쇠약해졌고, 마침내 [[전진]]의 [[부견]]이 [[왕맹]]을 앞세워 전연을 침공하자 모용위는 전진에 항복하여 전연은 멸망하였다. 전진에서 신흥후로 책봉된 모용위는 이후 [[비수대전]]의 패배로 전진이 몰락하자 내부에서 복국을 도모하였으나 발각되어 피살되었다. == 일생 == 처음에는 중산왕(中山王)에 봉해졌다가, 이내 형들이 요절하여 태자가 되었다. 모용준이 사망하자 360년에 고작11세의 나이로 황위에 올랐다. 모용준은 죽으면서 동생 모용각(慕容恪), 숙부 모용평(慕容評), 그리고 원로 공신 모여근(慕輿根)에게 유언을 내려 후사를 부탁했는데, 따라서 이 셋은 각기 삼공의 자리를 나누어 맡고 어린 모용위를 보좌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모용각이 태재(太宰)로 섭정을 맡아서 전권을 대리하게 되자, 여기에 불만을 품은 모여근은 모용각과 모용위 사이를 이간질하고, 종국에는 둘 다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모용위는 오히려 모여근의 음모를 간파하고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진작부터 모여근의 역심을 알고 있었던 모용각이 자초지종을 까발리면서 모여근은 온 가족이 떼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 일로 전연의 조정에는 한동한 공포 정국이 조성되었지만, 모용각이 앞장서서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이자 이것도 해소되었다. 이후 모용각의 섭정하에 전연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모용각이 죽자 [[모용외]]의 아들 모용평이 태재(태부)가 되었는데, 그는 무능한데다 [[부패]]하기까지 해서 전연은 점점 쇠약해진다. 결국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前秦)의 [[부견]]이 [[왕맹]]을 앞세워 전연을 침공하자, 전연은 멸망하고 모용위는 부견에게 항복하였다. [[고구려]]로 망명한 태재 모용평은 복수의 그날 만을 노리고 있던 [[고국원왕]]에게 그대로 묶여 전진으로 다시 압송된다. 모용위는 부견의 휘하에서 신흥후에 임명되었다. [[비수대전]]에서는 후방에 있었으나 이후 [[모용수]]가 거병하여 전연을 재건한 [[후연]]을 세우자 장안에서 감시를 받는 처지에 놓였다가 같은 선비족인 서연의 모용충(慕容沖)[* 후에 서연의 2대 왕이 된다. 수세에 몰려 모용홍의 휘하에 있었음.]의 공격에 부견을 뒷치기 하려다가 들켜. 부견에게 목숨을 잃었다. 부견이 모용수에게는 마치 영웅이 영웅을 알아보듯 관대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의 장면. 하지만 사실 부견도 "내가 그대를 대우한 것이 어떠했기에 이런 뜻을 품었는가?"라고 말했다. 그때 그의 가신인 모용숙이 "가문과 나라의 일이 중한데 어찌 의기(意氣 : 은혜)를 논하겠소!"라고 대꾸하자 격분한 부견에게 끔살. [[http://xakyntos.egloos.com/2354331|#]]. 이때의 학살극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것은 모용수의 서손인 [[모용성]] 밖에는 없었다. 그의 동생 [[모용홍]]이 세운 [[서연(오호십육국시대)|서연]]에선 유황제로 추증하고, 약 14년 뒤 숙부 [[모용덕]]이 세운 [[남연]]에선 헌무황제로 추증하였다. == 둘러보기(계보) == ||<tablealign=center><-5><#c0c0c0> '''[[모용선비/왕사|{{{#000000 전연의 역대 황제}}}]]''' || ||<width=30%><|2> 2대 열조 [[모용준|경소제]] 모용준 ||<|2> {{{+1 ←}}} ||<width=30%><|2> '''3대 유황제 모용위''' ||<|2> {{{+1 →}}} ||<width=30%> [[서연(오호십육국시대)|서연]] 초대 [[모용홍|제북왕]] 모용홍 || || [[후연]] 초대 [[모용수|성무제]] 모용수 || [include(틀:오호십육국 왕조)] [include(틀:진서)] [include(틀:모용선비/왕사)]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황제]][[분류:모용선비]][[분류:친족살해자]][[분류:350년 출생]][[분류:38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