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후연 황제)]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6f00ff><tablebgcolor=#6f00ff><tablecolor=#000,#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100c4 0%, #6f00ff 20%, #6f00ff 80%, #1100c4)" '''{{{#fecd21 후연 제3대 황제[br]{{{+1 中宗 昭武帝 | 중종 소무제}}}}}}'''}}} || ||<width=80> '''[[묘호|{{{#fecd21 묘호}}}]]''' ||<colbgcolor=#fff,#000><(> '''[[중종]](中宗)''' || || '''[[시호|{{{#fecd21 시호}}}]]''' ||<(> 소무황제(昭武皇帝) || || '''[[연호|{{{#fecd21 연호}}}]]''' ||<(> 건평(建平) 398년 6월 ~ 399년 1월 [br] 장락(長樂) 399년 1월 ~ 401년 8월 || || '''[[성씨|{{{#fecd21 성}}}]]''' ||<(> 모용(慕容) || || '''[[휘|{{{#fecd21 휘}}}]]''' ||<(> 성(盛) || || '''[[자(이름)|{{{#fecd21 자}}}]]''' ||<(> 도운(道雲) || || '''{{{#fecd21 부모 관계}}}''' ||<(> 부황: [[모용보]] / 모후: 정씨 || || '''{{{#fecd21 생몰 기간}}}''' ||<(> 373년 ~ 401년 음8월(29세)[* 자치통감 기준, 진서의 향년을 적용.] || || '''{{{#fecd21 재위 기간}}}''' ||<(> 398년 음6월 ~ 401년 음8월(3년)[* 자치통감 기준, 진서의 재위 기간을 적용.] || [목차] [clearfix] == 개요 == [[후연]](後燕)의 제3대 군주. 휘는 성(盛), 자는 도운(道運), 시호는 소무황제(昭武皇帝)이다. [[모용보]]의 서장자로,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민첩하며 모략을 꾸미는 데 능하다는 제법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북위]]가 성장함에 따라 후연의 판도는 [[요서]]로 축소되고 정치적으로도 내분이 일어나 혼란스러웠는데, 모용성은 정권을 찬탈한 [[난한]]을 타도하여 모용씨의 몰락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두려움|공포]] 정치로 권력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공포 정치는 신하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고, 모용성은 단기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입은 [[부상]]으로 사망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 생애 == 385년, [[서연]]의 군대가 장안을 포위하고 [[전연]]의 마지막 황제 [[모용위]]가 반기를 들자,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의 [[부견]]은 장안 내에 있는 모용 가문 사람들의 대부분을 몰살했다. 이 때 모용성은 성을 탈출해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당숙이 되는 모용충(慕容沖)이 다스리는 서연으로 도주했다. 1년 뒤 서연을 나와 [[후연]]으로 향한다. 387년, 후연에 도착한 그는 장락왕(長樂王)으로 임명되었다. 398년, 단속골의 난이 일어나자 후연의 황제가 된 아버지 [[모용보]]와 함께 각지를 떠돌았는데, 아버지가 정서 [[난한]]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을 때 반대하다가 설득시키지 못하자 자신의 세력과 함께 이탈하였다. 얼마 후 난한이 자신의 아버지인 모용보의 목숨을 빼앗자, 모용성은 난한에게 거짓 항복하고 충성하는 척을 한다. 마침 난한은 모용성의 [[장인]]이기도 했기 때문에, 난한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했다. 모용성은 난한의 형들과 난한의 사이를 계속 이간질시켰고, 은밀히 모용기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사주한다. 결국 모용기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난한의 형 난제가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진다. 난한의 아들 난목이 난제의 반란을 진압하자 모용성은 그의 목숨을 빼앗았고, 군대를 시켜 난한과 그 일족을 싸그리 죽이고는 정권을 잡는다.[* 모용보 항목에서 보면 난한이 모용씨 가문을 어떻게 풍비박산 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서자인 모용성이 세력을 얻은 걸 수도 있지만.] 그 후 모용성은 난한에 의해 요동공이 된 숙부 [[모용희]]를 다시 하간공으로 되돌리고[* 모용성이 처음 정권을 잡으면서 자신이 황제로 즉위하길 거부하고, 여전히 장락왕의 호칭을 유지하였으므로 종실의 다른 왕들을 낮추어 공으로 삼았던 것이다.] 시중·거기장군·중령군·사예교위로 삼았다. 모용성은 398년 10월에 비로소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399년에 스스로 지위를 낮춰 서인천왕(庶人天王)이란 이름으로 통치를 시작한다. 그러나 말만 황제가 아닐 뿐, 급속도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한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권력 강화는 큰 후유증을 낳게 되니 바로 연이은 숙청극이 벌어졌던 것. 이 때 모용성은 작은 혐의가 있어도 잡아들이거나, 심지어 취조 없이 사건을 판결할 정도로 냉혹하게 숙청해대며 악명을 떨쳤다. 이에 신하들의 반발은 날로 커져서, 급기야 401년에는 전장군 단기의 반란이 터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모용성은 난을 진압하고 있었는데 남아있던 패잔병들의 습격으로 부상을 입었고 이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았다. == 평가 == 서자 출신에도 불구하고 두차례나 목숨을 건지며 끝장날 뻔한 모용씨 가문을 구해내고 난한을 역관광시켜 목숨을 잃게 만들었을 만큼 재주 있는 인물이었지만, 결국 공포 정치로 몰락해버린 비운의 군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도중에는 유능했으나 잦은 옥사로 폐위된 [[광해군]]에 비견되기도 한다. == 둘러보기(계보) == [include(틀:진서)] ||<tablealign=center><-5><#c0c0c0> '''[[후연#s-4|{{{#000000 후연의 역대 황제}}}]]''' || ||<width=30%> 비정통 [[난한|창려왕]] 난한 || {{{+1 ←}}} ||<width=30%> '''3대 중종 소무제 모용성''' || {{{+1 →}}} ||<width=30%> 4대 [[모용희|소문제]] 모용희 || [include(틀:모용선비/왕사)] [[분류:373년 출생]][[분류:401년 사망]][[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황제]][[분류:모용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