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후궁]] [include(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3352><tablebgcolor=#C23352> {{{#gold '''조선 태종의 후궁'''}}}[br]{{{#gold {{{+1 '''명빈 김씨 | 明嬪 金氏'''}}}}}} || ||<width=50> '''{{{#gold 출생}}}''' ||<colbgcolor=#fff,#1f2023>미상 || || '''{{{#gold 사망}}}''' ||[[1479년]]^^(성종 10년)^^ || || '''[[본관|{{{#gold 본관}}}]]''' ||[[안동 김씨|안동(安東)]] || || '''{{{#gold 부모}}}''' ||부친 김구덕(金九德) 모친 장숙택주 영월 신씨 || || '''{{{#gold 부군}}}''' ||[[태종(조선)|태종]] || || '''{{{#gold 자녀}}}''' ||자녀 없음 || || '''{{{#gold 묘소}}}''' ||<-2>[include(틀:지도, 장소=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 14, 너비=100%)]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 14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태종(조선)|태종]]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돈녕부 판사를 지낸 안정공 김구덕이며, 어머니 장숙택주 영월 신씨이다. 태종의 다른 후궁들과 달리 자녀가 없었으나, 가장 장수하여 [[성종(조선)|성종]] 10년까지 내명부를 지켰다. == 생애 == 1411년(태종 11) 태종은 '일빈이잉(一嬪二媵)'의 빈어 제도를 마련한 후, 김구덕의 딸을 빈(嬪)으로 삼고, 전 제학(提學) 노귀산의 딸과 전 지성주사 김점의 딸을 두 잉(媵)으로 삼았다. >김씨(金氏)를 봉하여, 명빈(明嬪)을 삼고, 노씨(盧氏)는 소혜 궁주(昭惠宮主)를, 김씨(金氏)는 숙공 궁주(淑恭宮主)를 삼았다. >---- >《조선왕조실록》 태종 11년 11월 20일 이때부터 후궁 제도가 완전히 정착하였다. 태종 시대에 유일하게 빈(嬪)의 지위에 있던 후궁이었고, 그녀의 거처를 가리켜 명빈전(明嬪殿)이라고 불렀다.[* 태종의 후궁들 대다수가 후대에 정1품 빈으로 봉작되었다. ] [[세종(조선)|세종]]의 첫 번째 큰며느리이자 [[문종(조선)|문종]]의 첫 정실부인인 [[휘빈 김씨]]가 그녀의 조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