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멕시코의 역사)] ||||||<:><table align=right><tablewidth=400> {{{+2 '''멕시코 제국'''[br]Imperio Mexicano}}} || ||<:> [[파일:Bandera_del_Primer_Imperio_Mexicano.svg.png|width=150]] ||<:> [[파일:800px-Coat_of_Arms_of_the_First_Mexican_Empire.svg.png|width=120]] || ||<width=50%><:> 국기||<width=50%><:> 국장 || ||||||<:> [[파일:500px-First_Mexican_Empire_(orthographic_projection).svg.png|width=250]] || ||||||<:> 1821년 ~ 1823년 || || 별칭 ||멕시코 제1제국(Primer Imperio Mexicano) || || 표어 ||Religión, Independencia, Unión(종교, 독립, 단결) || || 면적 ||4,925,283 km^^2^^ || || 인구 ||600만 명 || || 수도 ||[[멕시코 시티]] || || 정부 형태 ||[[전제군주제]][* 제1제국 당시 멕시코에는 헌법이 없었다.] || || 국가원수 ||[[황제]] ([[아구스틴 1세]]) || || 언어 ||[[스페인어]] || || 민족 ||[[멕시코인]][* [[페닌술라르]], [[크리오요]], [[메스티소]], [[아메리카 원주민|원주민]]들 간의 대립과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통합된 멕시코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이 아직 확립된 시기가 아니었다.] || || 통화 ||[[레알]] || || 건국 이전 ||[[누에바에스파냐]] || || 멸망 이후 ||[[멕시코 임시정부]][br][[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 || [목차] [clearfix] == 개요 ==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근대 [[멕시코]]의 첫 정부체제. == 역사 == 멕시코는 [[아즈텍 제국]] 멸망 이래 [[스페인 제국]]의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이래 쇠퇴 일로를 걷던 [[스페인]]이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 [[반도 전쟁|본토가 유린]]당하며 해외 [[식민지]]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자 미겔 이달고(Miguel Hidalgo y Costilla,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 신부가 돌로레스라는 마을에 위치한 그의 교회에서 사람들을 부른 뒤 스페인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킬 것을 부르짖었고(돌로레스의 부르짖음;Grito de Dolores), 이후 그를 중심으로 [[1810년대]] [[독립 운동]]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달고 신부는 [[1811년]] 스페인 군대와 [[크리올]]들에게 패배하였다. 이달고 신부의 사망 이후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José María Morelos)가 이어받아 4년간 항쟁을 계속하나, 그 역시 [[1815년]] [[아구스틴 1세|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Agustín de Iturbide)에게 무너진다. 독립운동은 실패하고 나폴레옹도 [[러시아 원정|스페인 본토에서 물러가게 된다.]] 그러나 이후 스페인의 정권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나폴레옹]]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자유주의자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크리오요]]들은 멕시코 식민지에서의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1821년]]에 멕시코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한다. 그 독립을 선언한 사람은 다름아닌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였다. 멕시코 사람들 모두가 독립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의 지배를 계속해서 바랐던 근왕주의자들도 있었다.[* 대체로 [[페닌술라르]]들은 스페인의 지배를 바라는 편이었고, 실제로 이들은 멕시코 독립 이후 추방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원주민]] 중에서도 [[틀락스칼텍]]인들은 멕시코의 전신인 [[아즈텍 제국]]의 약탈과 인신공양으로 엄청나게 고통을 받다가 스페인의 도움으로 아즈텍 제국에 복수했을 뿐더러 스페인 치하에서 전형적인 식민지가 아니라 자치령으로 지내면서 최대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에 멕시코의 독립에 강하게 반대했다.] 이 때문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정치적 술수를 썼다. 우선 독립을 선언하면서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섭정]]이 되었고, 당시 스페인 왕 [[페르난도 7세]]에게 멕시코 제국 황제 자리를 제안했다. 즉 정부는 별개이되 군주는 같은 [[동군연합]]을 제안한 것이다. 페르난도 7세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그러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다시 스페인 [[보르본 왕조]]의 인물을 멕시코 [[황제]]로 추대하기로 했지만 페르난도 7세는 그 어느 유럽의 왕실도 멕시코 황제로 추대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페르난도 7세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알고 있었고, 마치 '어쩔 수 없이 독립하는 것처럼' 위장해 멕시코 독립을 이뤄낸다. 물론 스페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독립 전부터 멕시코의 군권을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쥐고 있었으니 그가 전향한 이상 2류 국가가 된 스페인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스페인군이 독립운동 진압에 투입되기는 했는데 중요한 항구인 [[베라크루스]]에서 [[산타 안나]]가 격퇴했다.[* 스페인은 [[1836년]] [[12월]]이 되어서야 멕시코 독립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멕시코 의회의 추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모방해 스스로 황제 [[아구스틴 1세]]가 되었다.~~제왕병자~~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적임자가 간택되기 전까지의 임시 황제'라는 명목이었지만 그런 적임자는 있을 리가 없었다. 이때 '''[[멕시코]]는 현재 [[미국]] 서남부 지역인 [[텍사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일대를 차지하고, [[파나마]] 지협 이북의 중앙아메리카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는 아구스틴 1세의 제국이었다. 그러나 아구스틴 1세는 건국 직후 광속으로 인기를 잃어갔다. [[부정부패]]와 [[독재]]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1822년]]에 군주제 전복 기도가 발각되어 의원 16명이 체포되었는데 이 전복 기도라는 것이 아구스틴 1세의 조작이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고, 이를 토대로 [[의회]]가 반발하자 아구스틴 1세는 의회를 해산한다. 이 때 몇몇 군 지도자들은 이투르비데를 실각시키기 위한 계획을 짰고 이것이 12월에 완성된 카사 마타 계획(Plan of Casa Mata)이었다. 그 주요 골자는 멕시코의 군주제 철폐 및 공화국 성립이었다. 이에 따라 12월부터 멕시코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아구스틴 1세 역시 군권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지의 반란은 빠르게 진압되었지만 이 계획에 참여한 [[산타 안나]]의 반란군만큼은 진압되지 않았다. 산타 안나가 진압군 사령관을 설득해 배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1823년]]에 들어서면 몇몇 멕시코 독립운동가들도 카사 마타 계획에 동의했고, 멕시코 거의 대부분의 주도 카사 마타 계획에 동의해 아구스틴 1세는 고립에 빠졌다. 결국 아구스틴 1세는 1823년에 [[폐위]]되었고, 당시 [[토스카나 대공국]]의 일부였던 [[이탈리아]]의 리보르노로 추방당한다. 그리고 아구스틴 1세는 이후 다시 돌아왔다가 끔살(...) 이후 [[산타 안나]] 등을 비롯한 제국 반대파에 의해 [[멕시코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멕시코의 정치는 안정되지 못하여 [[박정희]], [[전두환]] 비스무리한 인간들이 공공연히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다. 한편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싫어서 이미 독립한 멕시코에 편입해 자유주의자들을 탄압하고자 했는데 멕시코가 [[공화국]]이 되면서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자 독립하고자 했고, 이에 따라 1823년 1월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한다. == 역대 황제 == * [[아구스틴 1세]](1822~1823) * 아구스틴 2세(명목상) == 역대 섭정 == *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1821~1822) [[분류:멕시코의 역사]][[분류:19세기 멸망]][[분류:아메리카의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