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국가(노래))] [목차] == 1933년 제정 == ||<#fff>[YouTube(wHuVlPE9g5I)]|| === 개요 === 1933년 제정되어 1942년까지 사용된 [[만주국]]의 국가, 일명 '''만주국 건국가([[중국어]]: 滿洲國建國歌)''' 국가의 성립 과정이 개판이었던 만큼 국가 지정도 마찬가지로 논란의 연속이었다. 원래 만주국 건국 선언과 거의 동시에 초대 국무총리였던 [[정샤오쉬]](정효서)의 가사에 당시 일본 양악계의 거물이었던 야마다 코사쿠가 곡을 붙인 것이 첫 번째 국가였는데, 국가 제정의 속내는 사실 [[1932 LA 올림픽|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만주국 선수단을 파견할 때 쓰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위원회도 없는 나라에서 파견한 선수단을 받아줄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아니었으므로 이 계획은 망했고, 국가 자체도 잦은 변박과 특색 없는 가락 등 음악적인 문제와 지나치게 [[유교]]적이고 현학적인 가사로 보급에 실패했다. 결국 이듬해인 1933년에 두 번째 국가가 제정되었는데, 이 국가도 마찬가지로 정샤오쉬가 작사하고 '만주국 문교부선'이라는 애매한 이름의 작곡 주체가 표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작곡은 당시 다롄에 머물고 있던 일본 음악인들인 타카츠 사토시와 소노야마 민페이, 무라오카 라쿠도가 맡았다. 이 국가는 첫 번째 국가와 달리 [[십팔사략]]에 나오는 유명한 에피소드인 [[소무#s-1|소무]](蘇武)의 이야기를 가사로 한 중국 민요의 가락을 소재로 해, 만주국 국민들의 다수를 차지하던 [[한족]]과 [[몽골인]], [[만주족]]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이 국가도 첫 번째 국가와 마찬가지로 유교적인 색채의 가사가 문제가 되었는데,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식민지와 괴뢰 정권에 자신들의 [[국가신토]] 이념을 강제로 주입하던 일본 측이 이것을 결코 좋게 봤을 리 없었다. 결국 건국 10주년을 앞둔 1941년 10월에 정샤오쉬의 후임으로 제2대 국무총리가 된 [[장징후이]]를 회장으로 한 국가제정위원회가 발족했고, 여기서 가사와 곡을 심사해 새로운 국가를 정하기로 했다. === 가사 === ||<-3><tablebgcolor=white,#191919><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80deg, #ffc200 30%, #ffc200 40%, #ffc200 60%, #ffc200 70%)" {{{+2 {{{#ffffff '''滿洲國建國歌'''}}}}}}}}} || ||<bgcolor=#ffc200><width=35%> {{{#000 天地內 有了[[만주국|新滿洲]] [br] 新滿洲 便是新天地 }}} || Tiāndìnèi yǒulexīnmǎnzhōu [br] xīnmǎnzhōu biànshìxīntiāndì || 천지 안에 [[만주국|새로운 만주]] [br] 새로운 만주는 바로 신천지[* 새로운 땅과 하늘이라는 뜻이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그 종교 아니다.]]--] || ||<bgcolor=#ffc200> {{{#000 頂天立地 無苦無憂 造成我國家 [br] 只有親愛竝無怨仇 }}} || dǐngtiānlìdì wúkǔwúyōu zàochéngwǒguójiā [br] zhǐyǒuqīn'ài bìngwúyuànchóu || 하늘을 이고 땅위에 서서 괴로움도 걱정도 없이 우리의 국가를 세웠도다 [br] 사랑만이 있고 아울러 원한이 없는 || ||<bgcolor=#ffc200> {{{#000 人民三千萬 人民三千萬 [br] 縱加十倍也得自由 }}} || dǐngtiānlìdì wúkǔwúyōu zàochéngwǒguójiā [br] zhǐyǒuqīn'ài bìngwúyuànchóu || 3천만 인민, 3천만 인민 [br] 열 배로 더하더라도 또한 자유를 얻으리라 || ||<bgcolor=#ffc200> {{{#000 重仁義 尚禮讓 使我身修 [br] 家已齊 國已治 此外何求 }}} || zhòngrényì shànglǐràng shǐwǒshēnxiū [br] jiāyǐqí guóyǐzhì cǐwàihéqiú || 인의와 예양을 중히 여겨 우리의 몸을 닦는다 [br] 가정과 나라가 다스려지면 이외에 바랄 것 무엇이랴 || ||<bgcolor=#ffc200> {{{#000 近之則與世界同化 [br] '''遠之則與天地同流''' }}} || jìnzhīzéyǔshìjiètónghuà [br] yuǎnzhīzéyǔtiāndìtóngliú || 가까이로 세계와 더불어 함께 교화하자 [br] '''멀리로는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흘러가자''' || == 1942년 변경 == ||<#fff>[YouTube(Q2gvVEJemd8)]|| === 개요 === 일본은 당시 대동아공영권을 제창하면서 그 공영권을 묶을 이념으로 자신들의 고유신앙인 [[국가신토]]로 하여금 자신들의 점령지에서 일본의 사상을 주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주국에 국가 변경이 다시금 거론되었다. 그리하여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앞둔 1941년 10월, 제2대 총리 [[장징후이]]를 회장으로 한 국가제정위원회가 발족, 여기서 새로운 국가를 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징후이는 바지사장이었고, 위원회의 모든 실무는 총무청 홍보처장인 일본인 관료 무토 토미오가 담당했다. 특히 첫 두 국가들이 모두 [[중국어]] 가사 기반이었지만 이번엔 [[일본어]] 가사를 먼저 쓰고 나중에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그 결과 [[일본서기]]의 천손강림을 강조한 가사와, 거기에 첫 국가의 작곡가인 야마다 코사쿠가 창가 풍의 곡을 입혀 일본색 충만한 새 국가가 완성되었다, 일명 '''만주국 국가([[중국어]]: 滿洲國國歌)''' 불과 10년 사이에 2번씩이나 국가를 갈아치웠기 때문인지, 만주국 정부에서는 50명의 성악가들로 '국가봉창단'을 조직해 전국에 가창 지도를 보내고 신징방송국에도 시도때도 없이 국가를 방송하도록 해 청자들에게 ~~세뇌~~주입시키는 등 보급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http://www2.nhk.or.jp/archives/shogenarchives/jpnews/movie.cgi?das_id=D0001300504_00000&seg_number=001|듣기]] 그 결과 첫 두 국가보다는 좀 더 자주 불려지게 되었지만, 실제 공식 행사에서는 오히려 [[기미가요]]가 더 많이 쓰였다. === 가사 === ||<:>중국어|| ||神光開宇宙 表裏山河壯皇猷|| ||帝德之隆 巍巍蕩蕩莫與儔|| ||永受天祐兮 萬壽無疆薄海謳|| ||仰贊天業兮 輝煌日月侔|| ||<:>한국어 번역(중국어)|| ||신의 빛이 우주를 비추고 황제의 다스림은 산하를 튼튼히 하네|| ||높은 황제의 덕은 어떤것과도 견줄 수 없네|| ||영원히 하늘의 인도를 받으며 만수무강하리라|| ||하늘의 성스런 일을 해낸다면 그 영광은 해와 달과 같으리|| ||<:>일본어|| ||[ruby(大, ruby=おほ)][ruby(御, ruby=み)][ruby(光, ruby=ひかり)] [ruby(天, ruby=あめ)]つ[ruby(地, ruby=ち)]に[ruby(充, ruby=み)]ち|| ||[ruby(帝, ruby=てい)][ruby(德, ruby=とく)]は [ruby(高, ruby=たか)]く [ruby(尊, ruby=たふと)]し|| ||[ruby(豊, ruby=とよ)][ruby(榮, ruby=さか)]の [ruby(萬, ruby=ばん)][ruby(壽, ruby=じゆ)]ことほぎ|| ||[ruby(天, ruby=あま)]つ[ruby(御, ruby=み)][ruby(業, ruby=わざ)] [ruby(仰, ruby=あふ)]ぎ[ruby(奉, ruby=ま)]つらむ|| ||<:>한국어 번역(일본어)|| ||찬란한 폐하의 빛이 천지에 가득하여|| ||폐하의 덕은 높고 숭고하도다|| ||넘치는 영광이 오래 가기를 기원하며|| ||하늘의 대업을 우러러 모시리|| [[분류:만주국]][[분류:국가(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