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萬人疏. 조선시대 [[상소]]의 일종. 공론을 중시한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생들이 조정의 정책에 강력히 반발할 경우 1만여 명 내외의 서명을 받아 공동 명의로 조정에 의견을 제시해 반대 여론을 공론화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서 조선 시대의 범국민 서명운동인 셈. == 역사 == 조선 역사 기록에 남은 만인소는 정조 16년(1792년)을 시작으로 19세기 말까지 총 7차례 있었다. 최초의 만인소는 [[노론]] 관료 유성환이 [[정조(조선)|정조]]가 주색잡기에 빠졌다는 내용으로 상소에서 비롯되었다. [[정조(조선)|정조]]는 역대 조선 왕들 중 가장 자기 관리가 철저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트집잡기에 발분한 영남 지방 유생들이 집단상소를 올렸고 그게 바로 만인소의 시작이었다. 당시 만인소에는 만인소에는 유성환의 처벌과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노론에 대한 처벌이 적혀 있었다. 여기서 진짜 무서운 것은 '만인소'라는 이름 그대로 상소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가 만 명이 넘는다. 정확히는 1만 57명. 사실 집단상소는 이전에도 있었고( 1565년 백인소, 1666년 천인소) 그 전통이 만인소의 바탕이 된 것이라고 볼수있다. == 매체 == [[임오화변]]을 다룬 [[사도(영화)]]에서 사도세자의 추숭을 부르짖는 영남 만인소 장면이 나올 뻔 했으나 영화의 엔딩이 늘어지는 관계로 편집당했다. 윤허하지 않으실꺼면 여기 가져온 도끼로 목을 치라는, 그리고 그걸 반대하는 신하들의 사도세자 추숭할꺼면 우리들 목부터 날리라는 ~~캐삭빵~~ 지부상소는 덤. 궁문 바깥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길이의 상소문 두루마리를 정조가 걸어가며 보다 궁문 바깥을 뒤덮은 채 읍소하는 일만 유생들의 모습을 보며 착잡해하는 장면이지만 잘려나간 관계로 CG 처리를 위한 초록벽이 남아있는등 불완전한 상태로만 유튜브에 [[https://youtu.be/y_TSxBhcyQg|공개되어]] 있다. == 역대 만인소 == * [[영남 만인소]] [[분류:조선의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