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려의 공작]][[분류:고려의 군인]][[분류:개성 왕씨]][[분류:토막글/인물]][[분류:토막글/역사]] [include(틀:토막글)] ||<-2><:><#191970> '''{{{#white 고려태조의 사촌동생 [br] {{{+2 만세 }}}}}}'''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91970><#191970> '''{{{#white 작위 }}}''' ||<colbgcolor=#ffffff,#2d2f34>영해공(寧海公) || ||<:><#191970> '''{{{#white 향직 품계}}}''' ||대광(大匡) || ||<:><#191970> '''{{{#white 성씨}}}''' ||[[개성 왕씨]](開城 王氏) || ||<:><#191970> '''{{{#white 이름}}}''' ||만세(萬歲) || ||<:><#191970> '''{{{#white 생몰연도}}}''' ||? ~ ? || [목차] == 개요 == 후삼국시대의 인물. 고려태조의 사촌동생으로 '대광 만세', '영해공 만세'로 등장한다. == 설명 == 후삼국시대 후반부인 932년, [[후백제]]의 해군장군 [[상애]]가 이끄는 수군이 [[서해]] 및 [[예성강]]을 통해 대우도(大牛島)를 공격하자 여기에 맞서 싸웠지만 큰 패배를 기록했다. 대우도는 고려의 수도 개경과 가까웠기에 태조 왕건은 이 패전 소식을 듣고 우려했으며, 유금필 등 호족들의 지원으로 겨우 막았다.[* 고려사 유금필 열전 출처.] 이렇게 [[칠천량 해전]]에 맞먹는 패배를 내고도 딱히 큰 책임을 지진 않았는지, 3년 뒤 935년 [[견훤]]이 고려에 귀순할 때 장군 [[유금필]]과 함께 전선 40척을 이끌고 바다에서 그를 맞이했다.[* 수도 바로 앞인 예성강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후백제국왕 견훤을 맞이하는 사신으로 선택됐다는 점은 만세가 당시 왕건에게 가까운 인물이었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 만세의 가계 == 만세는 성씨가 없는 듯한데, 늘 이름인 만세로만 등장한다. 하지만 '고려사 [[왕규(1142)|왕규]] 열전', '[[왕충(1078)|왕충]] 묘지명'의 기록을 보면 만세는 태조 왕건의 사촌동생이라고 명시돼 있다. 왕건의 사촌동생은 [[왕신]], 왕육, [[왕식렴]] 등 꽤 많았는데 만세도 이들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역임 관작 == 만세의 향직 품계는 ''''대광(大匡)''''으로, 2품 1등위 품계다. 대광은 보통 [[왕순식]] 같은 유력 호족이나 [[왕식렴]] 같은 고위 왕족만이 봉해졌는데, 만세는 태조의 사촌으로서 대광에 봉해진 듯 하다. 고려사 왕규 열전이나 왕충 묘지명엔 ''''영해공(寧海公)''''이라는 [[작위]]도 나온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만세, version=185, paragraph=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