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황제)] [include(틀:로마 제국의 전제정)] ||||<tablealign=center> [[파일:Galerius_Bust.jpg|width=300]] || || '''휘'''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갈레리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 [br] (Gaius Valerius Galerius Maximinus Daia) || || '''생몰 년도''' ||[[270년]] [[11월 20일]] [[요절/목록/41세 이상#s-7|~]] [[313년]] [[8월]] || || '''재위 기간''' ||[[305년]] [[5월 1일]][* 부제로서] / [[311년]] [[5월 5일]][* 갈레리우스의 죽음 이후 정제로서, 하지만 이미 4두정치가 망가져서 2년 내내 정제위를 두고 리키니우스와 경쟁했기 때문에 애매하다.] ~ [[313년]] [[8월]] || [[로마 제국]]의 황제. 전대에 [[군인 황제 시대]]를 열어젖혔던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같은 막시미누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므로 거기에 연이어서 [[막시미누스 2세]]라고 하기도 한다.[* [[영어 위키백과]]에는 항목명이 [[https://en.wikipedia.org/wiki/Maximinus_II|막시미누스 2세]]로 되어 있다.] 로마시대 [[갈레리우스]] 황제의 외조카로 305년 외삼촌인 [[갈레리우스]]에 의해 동방 부제의 자리에 올라 이집트와 시리아의 통치권을 위임받았다. 하지만 308년 자신의 외삼촌에 의해 [[리키니우스]]라는 무명의 군인이, 전현직 여러 황제들을 소집한 회동에서 서방의 정제[* 저 회동 자체가, 4두정치를 지키려는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스스로 4두정치를 파괴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제를 부제에서 올려야지, 웬 듣보잡을 자기 친구라고 해서 바로 정제로 올렸기 때문이다.]에 오르게 되자 불만을 품게 된다. 그래서였는지, 동방 정제인 삼촌이 멀쩡히 살아있던 310년에, 자신에게도 정제 지위를 달라고 삼촌에게 요구했지만, 삼촌 갈레리우스는 정제의 희소성을 생각해서 딱 잘라 거절하고 대신 Filius Augusti(아들 황제)라는 칭호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막시미누스는 정제의 복장과 상징을 자기 멋대로 그냥 썼다고 한다. 기독교를 싫어해서, 외삼촌 갈레리우스가 사후 한 달 전쯤(311.4) 발표했던 기독교 관용령([[https://en.wikipedia.org/wiki/Edict_of_Toleration_by_Galerius|Edict of Toleration by Galerius]])를 그냥 무시하고 자신의 지배 영역에서 유혈 탄압을 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병사들이 기독교인들을 쫓다가 어느새 '''아르메니아 국경을 그냥 넘어가서'''(...) 아르메니아 쪽에서 크게 항의를 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 사가 락탄티우스의 <박해자의 최후>(De Mortibus Persecutorum)에 의하면, 그의 최후에 대한 묘사는 삼촌 [[갈레리우스]]처럼 최대한 리얼하게 나와 있는데, 잘 죽었다고 비꼬는 것으로 보인다.[* 음독 후 며칠에 걸쳐서 정신착란, 발작, 흙 집어 먹기, 맨벽에 이마 찧기, 안구에서 빠져나온 눈알 등등... ] [[311년]] 외삼촌 갈레리우스 사후 서방 정제의 직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방으로 오게 된[* 서방에는 경쟁자가 콘스탄티누스, 막센티우스 둘인데 동방에는 경쟁자가 다이아 하나인 점 때문으로 보인다.] 리키니우스와는 관할권을 두고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고, 2:2 구도가 되니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의 원리로 [[막센티우스]][* 원래 리키니우스는 서방 정제로, 서방에서 가장 중요한, 즉 정제가 영유할 땅은 당연히 로마 시가 있는 이탈리아고, 그런 이탈리아는 식량 안보 및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북아프리카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원래라면 리키니우스의 땅이었을 곳을 막센티우스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와 동맹을 맺게 된다. 하지만 막센티우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밀비우스 다리 전투|패해 죽어서]] 먼저 떨어져 나갔고, 결국 [[313년]] [[4월 30일]] [[트라키아]]의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Tzirallum|치랄룸(Tzirallum)에서 리키니우스에게 패하게 되면서]][* 에디르네(아드리아노플) 근교라, 이 전투가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Adrianople_(disambiguation)|역사상 여러 아드리아노플(에디르네) 전투 목록]]의 처음을 장식한다.] 결국 몰락하고 후퇴하면서[* <비잔티움 연대기>에 의하면 노예로 위장하고 달아났다고 한다.(...)] [[니코메디아]]를 거쳐 그 해 8월, [[소아시아]] 남동부의 [[타르수스]]에서 [[요절/목록/41세 이상#s-7|향년 만 42세로 죽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의하면 독(Poison)이 확실히 언급되었으므로, 독살이었거나 독으로 자살했을 것으로 보인다.[* His death was variously ascribed "to despair, '''to poison''', and to the divine justice".] 당대의 자료인 위에 언급했던 <박해자의 최후>에서도 '그는 독을 삼켰다'고 하고 있다. [[분류:로마 황제]] [[분류:270년 출생]] [[분류:31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