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11~20위)] [[분류:1912년 출생]][[분류:1943년 사망]] [[파일:220px-Max_Stotz.jpg]] '''막스 슈토츠(Max Stotz : 1912년 2월 13일~1943년 8월 19일)''' [목차] == 오스트리아 출신 장교 == 막스 슈토츠는 1912년 2월 13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österreich) 지방의 공업도시 슈베하트(Schwechat)에서 태어났다. 막스 슈토츠는 21살이 되던 1933년에 [[오스트리아]] 육군에 입대하여 [[보병]]으로 군생활을 하다가 1935년에 오스트리아 공군(Österreichische Luftstreitkräfte)으로 소속을 변경했다. 그 후, 1938년 3월 13일에 [[나치]]에 의해 [[안슐루스]]가 이루어지면서 유럽 최강의 [[공군]]으로 불리던 [[루프트바페]]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렸다. == 서부전선 == 독일 공군에 편입되었을 때, 그는 이미 조종 교육은 마스터한 후였고 최신예 전투기인 [[Bf 109]]에 적응하는 과정만 남아있었다. [[상사(계급)|상사]]로 임관한 막스 슈토츠는 1939년 9월 1일에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후부터는 제76전투항공단(JG76)의 정예 조종사들과 함께 출격을 시작하며 1939년 11월 7일에 [[프랑스]] 공군의 쌍발전폭기 [[포테즈 630]]을 격추하면서 처음으로 피맛을 보았다. 거듭된 출격과 차곡차곡 쌓여가는 전과로 막스 슈토츠 소위는 2급과 1급 [[철십자 훈장]]을 차례로 받았고, 1940년 9월 20일에는 공군 명예컵까지 수상했다. 1941년 6월까지 [[도버 해협]]에서 [[RAF]]의 [[스핏파이어]]와 [[호커 허리케인]]과 싸운 그는 [[영국 본토 항공전]] 기간 동안 자신의 격추 스코어를 16대까지 늘려놓았다. == 동부전선 == 6월 22일부터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한 그는 그해가 저물기 전인 12월 30일까지 무려 129대라는 엄청난 무공을 거두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에 기사철십자 훈장과 곡엽철십자 훈장을 받아 챙겼고, 장교로 진급 또한 이루어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1943년 2월에 [[중위]]가 된 그는 이제 자신만의 비행중대까지 이끌게 된다. [[스몰렌스크]] 공방전이 한창이던 1943년 8월 19일, 중대원들을 인솔하여 [[Fw 190]]A-5를 몰고 비텝스크(Витебск) 방면으로 출격한 그는 임무 도중에 프랑스인들로 구성된 정예 전투기 부대인 [[노르망디-니에멘]] 소속의 [[Yak-9]] 전투기에게 피격되어 추락했다. 부하들의 목격에 따르면 불붙은 기체에서 즉시 벗어나는 것을 보곤 그가 큰 부상은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대원들이 목격한 중대장의 마지막 모습은 [[낙하산]]이 펼쳐져 [[소련군]] 진지 쪽으로 떠내려 가는 장면이었고, 그 후로 막스 슈토츠를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막스 슈토츠 [[대위]]는 [[행방불명]]으로 처리될 때까지 700여회 출격했고, 그동안 189대의 공인 격추 기록을 인정받았는데 이것은 JG51에서 명성을 떨치던 수퍼 [[에이스(전투조종사)|에이스]] [[요아힘 브렌델]]과 같은 타이 기록이며, 항공전을 통틀어 18위에 마크되어 있다. == 서훈 == 공군 최전선 비행금장 [[파일:attachment/BmEKII.jpg|width=40]]2급 철십자 훈장 (1939년 11월 5일) [[파일:attachment/BmEKI.jpg|width=40]]1급 철십자 훈장 (1940년 6월 1일) 공군 명예컵 (1940년 9월 28일) [[파일:Das Deutsche Kreuz in Gold mit Brillanten.jpg|width=40]][[독일 십자훈장|독일 황금십자장]] (1941년 12월 1일) [[파일:attachment/BmRKEL.jpg|height=50]]기사철십자 훈장 (1942년 6월 19일)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제137호 (1942년 10월 30일) [[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