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 여배우/ㅁ]] [[분류:일본의 여성 방송인/ㅁ]] [[분류:한국계 일본인]] [[분류:1952년 출생]] [[분류:1967년 데뷔]] [[분류:오타구 출신 인물]] [[분류: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주연배우]] [[분류:일본으로 귀화한 인물]][[분류:자수포장]] [[파일:external/158ff6ac271641ac4e68b4dfff9d9b996a9462ea6d434bc75da37556f13354f7.jpg|width=100%]] ||'''이름'''||松坂慶子(Keiko Matsuzaka)|| ||'''한국명'''||한경자(韓慶子)|| ||'''출생일'''||[[1952년]] [[7월 20일]](현재 [age(1952-07-20)]세)|| ||'''출생지'''||[[도쿄 도]] [[오타|오타 구]]|| ||'''본관'''||[[한(성씨)|청주 한씨]]|| ||'''국적'''||[[일본]][* 결혼 후 귀화하였다.]|| ||'''신체'''||162cm, [[A형]]|| ||'''가족'''||어머니,남동생|| ||'''데뷔'''||1967년 [[울트라 세븐]][* 29화에서 [[우주세균 다리]]가 기생한 '카오루'라는 소녀로 첫 출연했다.]|| [목차] == 소개 == [[1952년]] [[7월 20일]]생.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 [[한국계 일본인]]으로 [[재일교포]] 2세이다. [[한국]]이름은 한경자이며, [[재일교포]]인 [[아버지]] 한영명(마츠자카 히데아키)씨와 일본인 [[어머니]] 츠네코와의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따라서 재일 한국인 2세보단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태어났을 당시에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것은 맞다. [[도쿄 도]] [[오타구]][* 작은 [[공장]]이 들어선 [[도쿄]]의 공업지대]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모유]]수유도 못 할 만큼 약해 병원 왕래도 잦았다. 5살 무렵 아버지의 권유로 [[피아노]], 노래 등을 배웠다. 또한 스스로 [[발레]]를 배우고 싶어해 부모가 데려다 준 극장에서 [[춤]]을 따라하며 놀았다. 그 이후 [[피아노]], 아동 [[무용]]을 배우기 위해 [[호두]] 예술 학원에 다닌다. 마츠자카의 아버지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마츠자카는 의욕이 없었다고 한다. 어릴 때 키가 커서 [[별명]]이 ‘땅두릅의 대목’이었고 운동신경도 좋아 남자아이와도 활발하게 노는 아이었다고. 한국인 피가 섞여서 인지 얼굴상이 일본 여인보다 한국 여인에 더 가까운 편이다. == 활동 == 1960년에 [[어린이]] [[합창|합창단]] 활동을 시작해서 [[중학교]] 3학년 때, ‘극단 해바라기’에 입단, 이후 1967년 ‘[[울트라 세븐]]’, ‘[[꾸러기 닌자 토리]]’, ‘닌자 괴수 싯포’로 텔레비전에 첫 출연을 하며 아동 배우가 되었다. 이 극단에서 활동을 하다가 17세때 [[스카우트]] 되어 1970년에 "다이에이"로 본격적으로 [[영화]]배우 데뷔를 했고, 1972년에 [[쇼치쿠]]로 이적했다. [[가수]]로도 활동하였는데, [[TBS 테레비]] [[드라마]] 시리즈 ‘수중화’(이츠키 히로유키 작)의 테마곡 ‘사랑의 수중화’를 불렀고, 바니걸 의상으로 [[섹시]] 여배우 이미지를 굳혀 스타로 떠오른다. 그러나 ‘사랑의 수중화’는 마츠자카가 [[가수]]로서 히트한 유일한 노래였다. 여기서 얻은 인기로 2, 30대이던 1970~80년대 일본 연예계를 주름잡던 [[청춘]] [[스타]]로 등극, 각종 [[드라마]], [[영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청순]]하면서도 관능적이며 [[섹시]]한 톤을 지닌 이중적 [[이미지]]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연기자가 되었다. 1980년대엔 영화 쪽에서 이름을 높였다. 주로 후카사쿠 킨지가 감독한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는데, ‘카마타 행진곡’, ‘청춘의 문’, ‘8인의 사무라이 전설’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서민극 프랜차이즈인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에도 출연하며 위치를 확고히 했고, 1990년엔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죽음의 가시"로 여러 영화상을 수상했다. [[칸 영화제]] [[칸 영화제/그랑프리|그랑프리]]를 수상했을 정도였고 연기 평도 상당히 좋았다. 전성기를 맞은 마츠자카는 [[광고]] 촬영도 많이 했다. 그 시작은 18살에 찍었던 [[화장품]] [[광고]]. 이후 [[라면]], [[보온병]], [[자동차]], [[카레]] 등 다양한 광고에 출연했다. 그 중엔 인터넷 괴담으로 유명한 [[크리넥스]] 티슈 CF도 있었다. 지금도 ‘Japan Kleenex’ 로 검색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광고 콘셉트 자체는 평범하지만 저화질 영상과 조금 음산한 음악 때문에 도시전설이 나돌았다. 중년에 접어든 후에도 그녀는 꾸준히 CF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파일:external/dolazy.com/a9e487770dbce1bfe8ebd661792f2ebf.jpg|width=500]]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마츠자카 케이코. 2000년에 "[[도쿄]] [[전화]]"의 [[CM]]로 [[무(채소)|무]]를 가진 [[주부]]를 코믹하게 [[연기]]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2002년에는 [[헤어누드]] 사진집 "[[벚꽃]] [[전설]]"을 찍어 히트했다. 그것도 '''나이 51살''' 에 말이다! 2005년 [[가을]]에 텔레비 [[아사히 방송]]으로 방송된 드라마 ‘숙년 이혼’의 주연을 맡아, 이혼 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주부로 호연했다. 최근에는 차분한 어머니나 아내 역을 많이 맡는다. 이외에 [[아오이 유우]]가 나왔던 "하와이언 레시피"(2009)에 출연하기도 하고, 2004년엔 [[하리수]]와 함께 ‘하리수 도색’에도 출연했다. 2013년에 개봉한 [[GARO 창곡의 마룡]]에서 최종보스인 쥬담 역을 맡았다. 연기 커리어 처음으로 와이어 액션에 도전했다고. 2014년도에는 아버지의 모국인 한국을 방문해 [[중앙대학교]]에서 연극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http://www.jpnews.kr/sub_read.html?uid=17954|#]] == 여담 == 1991년, 40세에 [[무명]]의 [[재즈]] [[기타리스트]]인 타카우치 하루히코와 [[결혼]]했다. 슬하에 두 자녀를 낳고 잠시 [[미국]]으로 이주했었다. 결혼에 반대하는 부친이 연일 와이드쇼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부친은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으로 15세에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와서 일본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일본인 공장주와 근로자들부터 조센징이라는 온갗 모멸을 받고, 나가사키현의 지옥섬 다카라지마에 [[광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다가 떠내려온 통나무를 붙잡고 탈출한 인물이었다. 온갖 [[차별]]과 싸우면서도 자식 교육에 공들였고 결과적으로 딸은 일본에서 톱 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딸의 결혼 뒤 [[재산]]문제 등으로 마찰이 끊이지 않아 방송에 출연한 것이라고 한다. [* 심지어 마츠자카 케이코의 아버지였던 마츠자카 히데아키는 케이코의 남편인 하루히코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으며 딸 내외와 대화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츠자카 일가가 벌이고 있는 골육상쟁극도 따지고 보면 일본 사회내에서의 [[재일교포]] 차별이 가져온 비극이나 다름없긴 하다. 그는 [[딸]]이 자신처럼 차별받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정성을 쏟아부었으나 딸이 일본인과 결혼하자 배신감을 느껴 갈등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반대하던 어머니하고도 절연한 상태였으나 아버지가 2007년 사망하면서 화해해, 지금은 가족이 어머니랑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