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1918년 출생]][[분류:2013년 사망]] '''마르틴 드레베스(Martin Drewes : 1918년 10월 20일~2013년 10월 13일)''' [목차] == 소개 == 날고 기는 [[독일 공군]]의 [[에이스]]들 중에서는 그리 돋보이지 않는 52대라는 격추수를 보유했지만, 그 전과의 대부분은 독일 본토에 가장 큰 피해를 안겨주던 [[아브로 랭커스터]]나 [[핸들리 페이지 핼리팩스]] 같은 4발 중폭격기였다. 마르틴 드레베스는 대전 기간 내내 다양한 형식의 메서슈밋 [[Bf 110]]만을 고집하며 이같은 높은 전과를 거두면서도 종전까지 살아남은 점에서 야간 에이스로서는 아주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마르틴 드레베스는 [[1차 대전]]이 패전을 향해 치닫던 [[1918년]] 10월 20일에 [[하노버]] 근교의 작은 마을인 브라운슈바이크(Lobmachtersen-bei-Braunschweig)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30년대 말에 독일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인 [[1939년]]에 독일 공군으로 전속을 갔다. == 쌍발 전투기를 타다 == 드레베스 [[소위]]의 첫 임무는 [[북해]] 상공을 초계 비행 구역으로 담당하고 있던 제76폭격항공단(KG 76) 예하의 제 II 비행단에 배속되어 구축전투기 Bf 110을 모는 것이었다. 특별 편성된 이 부대는 "상어떼(Haifischgruppe)"라고 불렸다. [[루프트바페]]는 [[1941년]] 5월에 영국-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 쪽을 지원하는 명목으로 KG4의 하인켈 [[He 111]]과 그가 속해 있던 KG 76의 중전투기들, 그리고 1대의 융커스 Ju 90이 포함된 [[수송기]] 12대로 편성된 이라크 공군 교관(Fliegerführer Irak)을 파견했다. 1차 대전의 에이스였던 베르터 융크(Werner Junck : 1895~1976 / 5대 격추)의 지휘를 받으며 중동에서 10일 남짓 치룬 교전에서 드레베스 소위는 1대의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복엽전투기를 첫 제물로 삼았다. 이 전역은 당시 외롭게 독일에 맞서고 있던 [[영국]] 입장에서는 2선급 전선이어서 이들에게 맞서는 항공 세력은 구식에다 그 숫자 또한 적었기 때문에, 독일 공군 지원부대는 이라크 지상군에게 화력을 제공해주고 물자를 운반해주는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이들이 [[모술]]에 주둔하고 있을 때 [[영국 공군]]의 [[폭격기]]들이 급습해와서 가져간 대부분의 기체는 부서져 버렸다. 드레베스 또한 영국군 트럭 대열을 향해 기총소사를 하다가 대공 기관의 반격에 엔진이 피탄되어 첫 불시착을 경험했다. Bf 110은 현지에서 수리를 거쳐 2대를 다시 사용하게 되었으나, 5월 26일이 되자 비행 가능한 Bf 110은 남지 않았고 다음날에 드레베스의 부대는 철수했다. == 야간전투기 에이스 == 중동 지역에서 돌아온 후 제76구축전투항공단(ZG 76)으로 재편성된 부대는 야간전투기 부대로 전환되면서 제3야간전투항공단(NJG 3)으로 개칭되었다. 마르틴 드레베스는 종전을 맞을 때까지 활약하게 될 제1야간전투항공단(NJG 1)로 전속가기 전까지 이 부대 소속으로 [[독일]] 본토 상공을 맴돌면서 내습하는 영국 폭격기들을 격추시켰고, 훈장을 차례로 받아가며 진급을 거듭했다. [[1944년]]에 [[대위]]로 승진한 그는 NJG 1 예하 제III비행단의 지휘관 보직이 맡겨졌다. 그는 이 부대를 지휘하며 종전까지 252회를 출격하면서 앞서 언급한 52기의 전과를 거두었다. 마르틴 드레베스는 야간전투기의 후방석에 앉히는 푼커(Funker : 통신수라고 하지만 실제 임무는 [[레이더]] 조작이다)과 매우 관계가 좋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유능한 통신수였던 에리히 한트케(Erich Handke : 1920~1987) 상사를 [[하인츠 볼프강 슈나우퍼]]에게 빼앗긴 후에는 임무 대부분을 게오르그 페츠(Georg "Schorsch" Petz) 상사와 함께 했다. 그는 야간전투기 조종사이자 지휘관으로 종군하는 동안 주간에 전투기 2대 - 1대의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1대의 [[스핏파이어]] - 를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는 4발 중폭격기였다. 1기의 [[쇼트 스털링]], 1기의 [[B-24]], 6기의 [[B-17]], 그리고 9대의 [[핸들리 페이지 핼리팩스]]에 더해 가장 많이 격추시킨 기종은 [[아브로 랭커스터]] 33대로, 승무원의 숫자만 세어봐도 300여명에 달한다. 이처럼 연합군에게 막심한 타격을 입힌 공적이 인정된 마르틴 드레베스 [[소령]]에게는 전군에서 839번째로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이 서훈되었다. == 전후 == 독일이 항복한 후 마르틴 드레베스는 다른 많은 야간전투기 조종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고, [[1947년]] 2월에 풀려난 그는 전쟁과 관계된 모든 것이라면 지긋지긋해졌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1949년]]에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브라질 남동부의 도시 블루메나우(Blumenau)에 민간기 [[조종사]]로 취직하며 정착한 그는 현지에서 브라질 여성과 결혼했고, 아내가 [[2010년]]에 죽을 때까지 해로했다. 아내를 잃고 나서 고국에 방문한 그는 [[2013년]]에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 그곳에서 95세 생일을 일주일 남겨둔 10월 13일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 서훈 == [[파일:attachment/BmEKII.jpg|width=40]]2급 [[철십자 훈장]] (1941년 5월 26일) [[파일:attachment/BmEKI.jpg|width=40]]1급 철십자 훈장 (1943년 4월 9일) [[파일:Das Deutsche Kreuz in Gold mit Brillanten.jpg|width=40]][[독일 십자훈장|독일 황금십자장]] (1944년 2월 24일) 공군 명예컵 (1944년 3월 31일) [[파일:attachment/BmRKEL.jpg|height=50]]기사철십자 훈장 (1944년 7월 26일)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제839호 (1945년 4월 17일)